투쟁 선봉에는 '예비의사와 젊은의사'…선배의사 영향 미미 SNS 활용 재기발랄 아이디어 눈길…제자 위기에 교수도 나서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부와 합의문을 도출해내고 서명까지 했다.
공공의대 신설, 의대정원 확대,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사업을 '4대악 정책'으로 규정하고 철회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지 한 달여 만이다.
메디칼타임즈는 8월 한 달을 뜨겁게 달군 의사들의 투쟁을 돌아봤다. 합의문에 서명은 했지만 젊은의사와 의대생의 집단행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ㄱ.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 정원 확대
정부와 여당이 함께 발표한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정원 확대 계획은 의료계 투쟁 의지에 불씨를 지피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022년부터 1년에 400명씩 10년 동안 4000명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렇게 확대된 의사 인력은 10년 동안 기피진료과, 소외지역에서 의무 근무해야 한다. 이 발표로 직접적 이해관계에 놓여있는 전공의를 비롯해 의대생이 강하게 분노하며 단체행동에 나섰다. 전공의는 업무 중단을, 의대생은 국시 거부와 동맹휴학을 하게 만들었다.
ㄴ. 나를 밟고 가라
수련을 받고 있던 제자들이 정부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상황에 처하자 교수들이 전면에 나섰다. 전공의들은 8월 21일부터 무기한 업무중단에 돌입했고, 복지부는 일주일 후 파업에 동참하는 전공의 색출 작업에 들어갔다. 교수들, 특히 대구 지역 수련병원 교수들은 직접 '불의와 맞서는 젊은의사들! 이제는 스승이 나서서 지킨다' 등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현장조사 중인 복지부 직원을 몸으로 막았다. 이밖에도 사직서 제출, 외래 및 수술 축소 등을 준비하며 제자 보호에 힘썼다.
ㄷ. 단체행동
전공의를 이끄는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다양한 방식의 단체행동을 기획해 눈길을 끌었다. 대전협은 8월 7일 여의도에서 첫 번째 '젊은의사 단체행동'을 열었다. 물론 체온 체크, QR코드 확인, 페이스실드 지급 등으로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철저히 했다. 이외에 릴레이 헌혈, SNS로 철야 정책 토론 등을 진행했다.
8월 21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면서는 '언택트 단체행동'을 기획했다. 젊은의사를 대상으로 온라인 학술대회를 진행하고, #2020젊은의사단체행동, #젊은의사자가격리, #병원과거리두기 등을 해시태그로 설정해 무기한 파업을 재치 있게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의 기획은 추후 의협이 기획하는 단체행동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의협 역시 자체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단체행동을 진행했다.
ㄹ. 라방(라이브 방송)
2000년 의약분업 투쟁 이후 20년만에 역대급 단체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동력에는 SNS(Social Network Services/Sites)가 있었다. 대전협 박지현 회장은 특히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현안에 대한 협회 입장을 비롯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직접 전달해 신뢰도를 높였다. 이밖에도대전협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의는 공식 SNS페이지에 입장문, 성명서 등 공지사항을 업로드 하고 단체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카드뉴스,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ㅁ. 명령
복지부는 집단휴진, 업무중단에 나선 개원의와 전공의에게 의료법 59조를 근거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개원의는 8월 14일과 26~28일 두 번에 걸쳐 집단휴진을 추진했다. 1차 총파업 때는 휴진율이 30%가 넘어가면, 2차 때는 휴진율이 10% 넘어서면 지자체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예정이었다. 2차 총파업 결과 4개 시도에서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무기한 업무중단에 들어간 전공의와 전임의에 대해서는 358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이 중 수도권 수련병원 전공의들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복지부는 여기에 더해 업무개시명령 후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와 전임의 10명을 형사고발했고 의료계의 투쟁 의지를 더 불타오르게 했다.
ㅂ. 비상진료체계
8월 21일부터 전공의가 순차적으로 업무 중단에 들어갔고 24일부터는 전임의까지 업무중단에 가세하면서 전국 대형병원들을 비상진료체계로 전환했다. 집단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외래와 입원진료를 축소하고 수술을 연기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까지 확산되자 환자를 줄이는 작업에 들어간 것. 그렇다 보니 조교수와 부교수 중심의 주니어 스태프들이 콜 대기, 당직, 선별진료 업무까지 맡으며 업무부담이 가중됐다.
ㅅ. 선배의사
한 달 동안 이어진 투쟁에서 선배의사, 즉 개원의의 영향은 미미했다. 개원의까지 참여하는 집단휴진은 8월 14일과 26~28일 총 두번 있었다. 정부 집계 발표에 따르면 휴진율은 처참했다. 75%에 달하는 전공의가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을 때 2차 총파업을 추진한 개원의 휴진율은 정부 추산 26일 첫날 최고 10.8%에 불과했다.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지자체도 4개 지역에 그쳤다. 이후에는 8.9%, 6.5%로 점점 줄었다. 의협은 정부의 통계가 낮게 책정된 것이며, 오전 휴진을 선택한 의원 등을 반영하면 자체 집계 결과는 훨씬 웃돈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전협은 참여율이 저조한 선배의사를 향해 서운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대신 선배의사들은 투쟁 활동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전협 및 의대협 성금 계좌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휴진을 하지 않는 대신 성금 지원을 했다는 글이 잇따랐다. 대전시의사회는 전공의와 전임의 생활비를 비롯해 학비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ㅇ+ㅈ. 예비의사+젊은의사
뭐니 뭐니 해도 이번 투쟁의 가장 큰 키워드다. 지난해 의협 최대집 회장이 총파업을 하겠다며 삭발하고, 단식투쟁까지 했지만 좀처럼 동력이 모이지 않았다. 정부가 불을 지폈고, 젊은의사와 의대생이 분노했다. 이들이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로 투쟁을 이끌면서 선배의사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 업무개시명령을 어겼다며 전공의가 형사고발을 당하고, 의대생이 국시를 포기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지자 투쟁 분위기는 점차 가열됐다. 두 번 이뤄진 야외 집회에는 1만명이 넘는 전공의와 의대생이 참여해 응집력을 과시했다.
ㅊ. 총파업
의협은 8월 1일 대정부요구안을 발표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젊은의사는 의협의 예고와는 별개로 단체행동을 진행했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야기하자면서도 정책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무한 반복했다. 의료계 역시 4대악 정책 '철회' 만을 외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직접 대전협 및 의협 집행부를 만나고, 대통령이 나서서 의료계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협의해보자는 온건 발언을 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ㅋ+ㅌ. 크레인+탄핵
최대집 회장은 지난달 14일 1차 전국의사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사다리차(크레인)까지 타고 등장해 "4대악 의료정책이 철폐되는 그날까지 어떤 협박이나 회유에도 절대 굴하지 말고 전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의대회에 자리한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랬던 그가 '철폐'라는 단어가 없는 합의문에 의협 회장의 권한으로 서명을 했다. 이 과정에서 투쟁의 선봉에 있었던 젊은의사의 의견을 최종적으로 수렴하지 않아 합의문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ㅍ. 파투
의료계는 투쟁을 하면서도 정부와 끊임없이 대화했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의협이 먼저 복지부에 대화를 청했다. 8월 19일 박능후 장관과 최대집 회장이 직접 만나 2시간 넘도록 대화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2차 전국의사 총파업을 앞두고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8월 24일 다시 만났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 합의를 위한 접점을 찾았다. 복지부는 합의문이라고 표현했고, 의협은 복지부의 '제안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의협과 복지부과 접점을 찾은 이 합의문은 대전협이 내부 회의를 통해 최종 거절하면서 불발에 그쳤다.
결국에는 집행부가 나서서 합의문을 도출해 내더라도 젊은의사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지난 4일 최종 합의문 도출에 권한을 위임받은 최대집 회장이 서명을 했음에도 젊은의사가 반기를 드는 장면에서도 반복됐다.
ㅎ. 합의문
투쟁 선봉에 있었던 대전협 박지현 회장 없이 의협 최대집 회장이 최종적으로 서명한 합의문은 대정부, 대국회 두 가지로 만들어졌다.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협의하기로 했다. 수련환경 개선, 건정심 구조개선 논의,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이 주요 안건으로 등장했다.
다만, 의료계에서 끊임없이 주장했던 '철회'라는 말은 빠졌다. 대신 중단,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협의 등의 말로 대체됐다. 합의문 발표 직후 젊은의사를 비롯해 의료계는 합의문 도출 과정에 문제가 있고 합의문 내용도 모호하다며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