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피습사건 방지책 내놨지만 개원의들 분노 "행정 편의주의" "일촉즉발 상황서 경찰과 양방향 대화할 수 있겠나" 불만 토로
"개원의가 정작 무엇을 필요로 하는 지 모르는 것 같다."
정부가 전국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비상경보장치 설치비 75만원을 지원키로 했지만 정작 의원들은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며 달가워하지 않은 모습이다.
심지어 받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보건복지부는 '정신의료기관 비상경보장치 설치 지원사업' 추진안을 마련, 각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하는 한편, 이를 전달받은 지자체는 보건소를 통해 관할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안내했다.
이는 2018년 12월 말 고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이 발생한 이후 법 제정을 통해 정부가 마련한 방지책에 의료계 현장에 적용했지만, 정작 대상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은 배제돼 있다는 것이 설치지원 사업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복지부가 내놓은 지원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총 허가 병상이 100개 미만인 정신의료기관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은 건강보험 수가 지원대상이 아니므로 설치비용 75만원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따라서 복지부는 예산으로 1333개소에 75만원을 지원할 것으로 내다보고 10억원을 책정했다. 정신의료기관과 의원은 10월 말까지 비상경보장치 설치를 완료하고 설치확인서 및 사진 등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비용 지원이 가능하고 설치에 따른 유지비 월 5500원은 의료기관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의료현장에서는 신경정신과학회와 정신과의사회와 논의해 결정된 지원책임에도 불구하고 '탁상행정'이 낳은 불필요한 지원이라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민간보안업체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의료기관들은 말한다.
특히 의료기관들은 복지부가 제시한 비상경보장치가 비록 인근 경찰과 연락이 가능하지만 '양방향'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복지부가 지원하는 비상 경보장치는 경찰과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하는데 겉만 들여다보면 장점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렇지 않다"며 "이는 경찰 측에 연락한 후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소통이 있어야만 출동하고 소통이 안 된다면 오지 않겠다는 뜻이다. 앞서 사건을 보듯이 경찰과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면 왜 도움요청을 하겠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지자체가 안내한 지원책 안내문을 살펴보면, 경찰청의 요청으로 '오작동 방지 등을 위해 양방향 모델(음성통화 비상벨)로 설치한 경우'만 지원비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를 두고서 의료계는 이전 의사 피습사건을 보듯이 일촉즉발 상황에서 경찰에 음성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행정편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원장은 "비상경보장치로 경찰에 연락할 경우 의원에서 음성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경우 오작동으로 인지하고 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전 사례를 본다면 긴급한 상황인데 의사가 경찰에 일일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게 된다면 상대를 오히려 자극해 더 큰 사고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경찰과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해서 특별히 좋을 것이 없다. 오히려 단방향이 낫다"며 "비상경보장치로 경찰에 연락한 후 경찰이 연락이 안 된다면 바로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경찰의 요구만 들었을 뿐 개원의들의 현장 목소리는 듣지 않은 정책"이라고 일갈했다.
"민간 보안업체가 경찰보다 낫다" 쓴소리
심지어 일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은 경찰이 아닌 보안업체의 시스템이 오히려 더 낫다면서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려는 움직임마저 존재한다.
현재 개원의들이 보안업체를 이용할 경우 긴급출동, 지문리더기, 잠금장치, 단방향 무선비상벨, CCTV 등을 지원받는데 설치비 20만원에 유지비가 약 1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반면, 정부는 양방향 무선수신기 1개, 비상벨 2개 설치하는데 75만원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여기에 매월 통신비 5500원은 의료기관이 자부담해야 한다.
또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보안업체는 단방향 수신기를 사용하는데 도움 요청 시 의료기관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한 후 직접 출동해 제압도 해주고 추가 도움이 필요할 시 경찰에까지 연락을 취하는 시스템"이라며 "이를 경찰이 직접 해주겠다고 하면 제일 좋지만 현재 정부는 보안업체를 통해 지원받는 비용은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두 가지 경우에 어떤 벨을 누르겠나"라며 "비상상황 시 솔직히 보안업체를 부르는 비상벨을 누르는 편이 낫다. 정부가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가운데 일부 개원의들은 차라리 정부의 지원액을 토대로 공동구매 형태로 비상 안전장치 설치를 하는 편이 낫다고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지원책이 알려지자 비상경보장치 생산업체들이 지원금인 '75만원'에 맞춰 판매금액을 올리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공동구매 형태로 의료단체가 의원급 의료기관에 맞는 비상경보장치를 구입한 후 이를 신청 받는 편이 낫다"며 "일부 제조업체가 패키지 형태로 75만원으로 판매를 하고 있는데 정부의 행정편의적인 지원책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