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용성과 위험성, 치료 시작 시기 등을 두고 의학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폐경기 호르몬 요법에 대한 다학제 진료 지침이 나오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정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잡음이 무성했던 유방암 위험성은 물론, 치료 시점과 적정 용량까지 이번 지침에서 총 망라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는 평가. 폐경 직후 호르몬 요법을 곧바로 시작하면 위험보다 혜택이 많다는 것이 다학제 학회들의 결론이다.
폐경기 호르몬 대체요법 다학제 진료지침 도출
대한폐경학회를 중심으로 하는 유관 학회들은 치료지침 발간 위원회를 통해 2020 폐경기 호르몬 대체요법 다학제 진료 지침을 마련하고 회원들에게 배부했다.
이번 지침은 폐경기 호르몬 요법(MHT)의 대상과 사전 검사 항목은 물론 각 질환군별 환자에 대한 호르몬 요법의 장단점과 처방 전략 등을 총 망라했다.
폐경기 호르몬 요법을 두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학회 차원에서 근거 중심 지침을 통해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일단 논란의 중심이었던 유방암 위험성에 대해서는 영향이 미비하며 일부 호르몬 요법은 오히려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결론을 내렸다.
WHI(Women's Health Initiative) 연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던 유방암 위험성 논란을 완전히 일축한 셈이다.
실제로 WHI 연구에 따르면 에스트로겐-프로게스토겐요법(EPT)을 받은 환자들은 침윤성 위험이 대조군에 비해 약 1.24배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돼 큰 파장을 가져온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사협회지(JAMA 2004;291:1701–1712)나 란셋(Lancet 2003;362:419–427)에 실린 논문들에서는 서로 다른 결과들이 나오면서 지금까지 논란은 지속돼 왔다.
특히 영국폐경학회(British Menopause Society)가 지침을 통해 EPT가 유방암을 유의하게 증가시킨다는 것을 공식화하면서 위험성 쪽에 무게가 실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폐경학회는 미국, 유럽 등과 우리나라간에 유방암 역학 차리를 고려하면 이러한 위험성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미국의 경우 유방암이 15세부터 시작해 40~49세에 증가하며 70~74세에 높은 발병률을 보이지만 우리나라 환자들의 경우 40대에서 50대에 환자수가 크게 몰려있다는 점에서 역학적 차이가 있다는 것.
서양의 경우 나이가들어가면서 유방암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반면 우리나라 환자들은 50대 초반까지 증가하다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 만큼 이들 국가들의 연구 결과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결론이다.
위원회는 "EPT 요법의 경우 유방암의 유의적 증가가 보고됐지만 한국과 미국의 유방암 역학은 다른 양상을 보이는 만큼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또한 Nurse Health Study에 따르면 경피적 에스트로겐 요법(ET)은 오히려 유방암 위험이 크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 만큼 이러한 위험성으로 폐경기 호르몬 요법을 막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타이밍 이론도 최종 결론 "폐경 직후부터 치료 시작해야"
폐경기 호르몬 요법 중 또 하나의 큰 논란인 타이밍 이론도 정립됐다.
간, 신장 기능 검사와 빈혈, 공복 혈당, 혈청 지질 검사, 유방 조영술을 실시한 뒤 적응증이 될 경우 폐경 직후부터 치료를 시작하라는 것이 이들 학회들의 공통된 권고다.
특히 만약 45세 미만의 젊은 폐경 여성의 경우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호르몬 요법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처방 기간에 대해서는 아직 여지를 남겨놨다. 이에 대한 명확한 의학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 하지만 잠재적인 이점이 분명하고 정기적인 임상적 추적 관찰이 동반되는 경우 처방 기간을 굳이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선에서 이를 정리했다.
이에 맞춰 질환별, 환자별로 구체적인 진료 지침도 첨부됐다. 질환, 환자군별로 폐경기 호르몬 요법의 장단점과 주의점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일단 혈관 운동 증상(VMS)의 경우 폐경기 호르몬 요법이 적극 권장된다. VMS가 중추 신경계의 에스트로겐 수치 감소와 관련해 나타나는 만큼 호르몬 요법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학회는 치료를 중단하면 증상이 재발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비뇨, 생식기 증후군(GSM)도 역시 증상이 나타난 즉시 국소 에스트로겐 사용을 권장했다. 또한 나아가 비에스트로겐 요법인 레이저 요법을 추가 요법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관상 동맥 질환 위험이 있는 여성도 역시 적극적으로 폐경기 호르몬 요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메타분석 결과 폐경 10년 이내에 호르몬 요법을 시작하면 관상동맥 질환의 경우 28%,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38%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HERS 연구 등에서와 같이 관상동맥 질환이나 심혈관 질환 예방 목적으로의 폐경기 호르몬 요법은 유의하지 않은 만큼 이를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정했다.
하지만 뇌졸중과 정맥 혈전 색전증 위험에 대해서는 주의를 주문했다. 뇌졸중의 경우 연령대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지지만 60세 이상일때 호르몬 요법을 시작한 경우 최대 1.5배까지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맥 혈전 색전증의 경우도 USPSTF(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연구 결과 호르몬 요법으로 인한 위험이 두배 가까이 높았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자궁내막암이 있는 여성의 경우 자궁 내막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적극적인 EPT 요법을 권고했다. 월 12~14일간 충분한 양의 병용 요법을 투여하면 자궁내막암 위험이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폐경기 호르몬 요법이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질환군로는 역시 골다공증이 꼽혔다.
대규모 메타분석에서 호르몬 요법을 받은 폐경기 여성들이 대조군에 비해 요추의 경우 6.8%, 대퇴골은 4.1% 골밀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NORA (National Osteoporosis Risk Assessment) 연구를 보면 호르몬 요법을 받은 여성들이 골절 위험이 최대 40%까지 낮았다.
이에 따라 학회는 60세 미만의 젊은 갱년기 여성 또는 폐경 후 10년 미만의 여성의 경우 골다공증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처방하라고 권고했다.
다만 저용량 및 처 저용량의 에스트로겐 요법의 경우 골절 위험을 줄인다는 근거가 없는 만큼 이에 대해서는 골다공증 예방 효과를 위한 처방을 권고하지 않았다.
치료지침 위원회는 "폐경기 이후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QoL)의 중요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지만 혜택이 많은 호르몬 요법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지침을 마련했다"며 "혈관 운동 증상과 폐경 비뇨 생식기 증후군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역시 폐경기 호르몬 요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골다공증 예방에도 폐경기 호르몬 요법의 효과는 이미 규명된 바 있다"며 "60세 미만의 여성 또는 폐경 후 10년 미만의 여성들에게 호르몬 요법은 분명 단점보다 더 많은 이점을 제공하는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