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신종 코로나19 감염과 계절성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의 트윈데믹 사태가 겹치면서 공포감이 상당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동안 100명 밑으로 떨어지며 잠잠했던 코로나19 확진자수는 최근 300명을 훌쩍 넘기며 2차 대유행에 걱정을 키우고 있다.
여기서 이슈로 급부상한 것이, 독감백신 포비아(phobia, 공포증) 문제다. 백신의 유통단계상 상온에 잠시 노출된 백신 일부가 폐기되는가 하면, 백신 접종을 끝마친 불특정 소수의 인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보도되면서 독감백신 접종 자체를 기피하는 여론까지 생겨난 것이다.
약물 사용과 관련해 빈번히 인용되는 의료계 용어들이 있다. 어떠한 효과도 없는, 소위 '밀가루 약'을 복용할 지언정 환자가 긍정적인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생각지 못했던 치료효과를 보일 수도 있다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위약효과)'는 친숙하다.
그런데, 현상황에선 이에 정반대 개념으로 사용되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1961년 미국 의료진인 월터 케네디(Walter Kennedy)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언급된 해당 심리학 용어는, 쉽게 말해 의료진이 제대로된 약제를 처방했음에도 환자가 가진 약효에 대한 불신이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정적인 치료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지칭한다.
백신을 포함해 다양한 치료제를 사용하는 환자들의 불신과 부정적인 믿음이, 결국 약제가 가진 본래의 효과를 저해하거나 환자의 건강을 해치는 극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약제 처방을 둘러싼 노시보 효과 문제를 놓고, 최근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속관리가 필요한 대표적 만성질환에 속하는 이상지질혈증 분야에는, 대명사격으로 사용되는 치료제가 있다. 인지도가 높은 만큼 실제 주위에는 '스타틴'을 복용하는 사람도 적지가 않다.
통상 스타틴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중증의 심뇌혈관 질환 등을 줄이는 혜택을 이미 검증받은 약제다. 하지만 일부 환자의 경우엔 스타틴 치료과정에서 드물게 보고되는 부작용 증세가 나타나면 자발적으로 투약을 중단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 스타틴을 장기간 복용한 환자에서는 그동안 횡문근 융해증을 비롯한 근육통, 인지기능 저하, 수면장애, 발기부전, 제2형 당뇨병 등 중증 부작용 발생보고가 있어왔다. 때문에 스타틴 처방의 득과 실 논쟁은 학계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제로 다뤄졌던 것.
그런데 올해 미국심장협회(AHA) 학술대회에서 공개된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부작용 가운데 90% 정도는, 부작용 위험을 미리 알고있는 스타틴 복용자들의 지레 짐작에서 오는 노시보 효과일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임상시험 참가자 중 24명은 부작용을 참을 수 없어 임상기간 초기에 최소 한 달 이상, 총 71회 복용을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복용 중단 71회 가운데 31회는 위약을 먹은 달에, 또 40회는 스타틴을 복용한 달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보고된 부작용이 노화에 따른 전형적인 통증일 수도 있으며, 스타틴 자체가 일으키는 경우는 아주 소수에 그친다는 평가였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올해 독감백신의 문제를 제기하는 청원글이 여럿 올라와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이 백신 접종에 따른 사망 사고 등 안전성 우려였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이상반응으로 잡음이 많은 약제일 수록 투약에 대한 거부감이나 공포심이 생기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겨난 막연한 거부감은, 의약품의 신뢰성 문제로까지 연결되면서 집단면역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약효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효과를 걱정해야는 상황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