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재평가 따른 허가취소‧적응증 삭제 시 청구액 반환 요구 제네릭 약가 협상과 맞물려 제약사 이중 부담…"차라리 법 만들자"
|기획|제네릭 정책 대변화, 부담 커진 국내 제약사들
복제의약품(제네릭) 생산을 위주로 한 국내 제약사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1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라 약가협상을 위주로 한 정책을 최근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건보공단의 제네릭 약가협상 과정을 짚어보고, 당사자인 제약사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정부가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시작으로 의약품 임상 재평가를 공식화하면서 국내 제약사들이 벌써부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욱이 임상 재평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제네릭(복제의약품) 약가 협상과 맞물리면서 자칫 이중 족쇄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
자칫 재평가로 허가가 취하되거나 일부 적응증이 삭제될 경우 그동안 받아온 청구 금액 전액을 환수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이 100개 넘게 제네릭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모든 의약품에 약가 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며 하소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차라리 모든 제네릭에 의무적으로 부담을 지울 작정이라면 법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로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협상 '합의서'에까지 등장한 의약품 재평가
건보공단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 제네릭 협상을 시작하면서 테이블에 앉은 제약사들에게 '요양급여 합의서'를 내밀고 있다.
합의서 상 제약사가 지켜야 할 것 중 하나는 '의약품 재평가 시 임상시험 통지 및 조치' 의무다. 간단히 말하면 식약처가 의약품의 재평가를 위해 특정 약제를 임상시험 대상으로 공고하면 제약사가 이를 건보 공단에 통지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 것이다.
제약업계에서는 통지 의무보다도 이후 벌어질 임상시험 결과에 따른 조치를 더 걱정하고 있다.
재평가에 따른 임상시험 결과로 인해 혹여나 의약품 허가 취하로 이어질 경우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한 날부터 약제급여목록 제외 일까지 청구금액 전액'을 건보공단에 내야 할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일부 적응증이 삭제되는 경우도 마찬가지. 제약사는 임상시험계획서 제출한 날로부터 허가사항 변경일까지 청구금액 중 삭제된 적응증에 해당하는 금액을 건보공단에 반환해야 한다. 다만, 임상시험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아 허가가 취하되거나 변경된 경우는 제외된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콜린알포세레이트(이하 콜린알포)' 성분 의약품이 대표적인 사례.
앞서 복지부는 콜린알포 성분 의약품 재평가에 따라 급여범위 축소와 동시에 환수 계약을 명령하면서 건보공단은 이를 판매하는 제약사를 상대로 '급여환수 요양급여계약'을 벌이고 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건보공단과 환수계약에 합의한 뒤 향후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증명해내지 못해 허가가 취하되거나 적응증이 삭제될 경우 이 기간의 청구금액 전부를 내놔야 하는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국내 콜린알포 시장 규모는 약 3500억원에 달한다. 가령, 청구 상위 제약사 별로 많게는 한 해 900억원에 달하는데 임상시험이 몇 년간 이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허가 취소 혹은 적응증 삭제 시 수배억원을 반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콜린알포 성분 의약품 급여환수 계약에 서명한 제약사는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이로 인해 지난 10일까지였던 협상 기한을 3월 15일까지 연장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네릭 협상에 따른 합의서에도 재평가 의약품의 경우 임상시험 기간 동안 허가 취하나 적응증 삭제에 따른 청구금액 전부를 반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모든 제품에 일률적으로 적용시키는 의무부담으로서도 지나친 수준인데, 협상의 형식을 띈 것조차도 문제다. 협상의 형식이 아닌 법령으로 반영하면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공급의무' 강제조항 두고 엇갈리는 시선들
건보공단은 제네릭 협상에서 의약품의 '공급의무'를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근 연달아 의약품을 둘러싼 공급중단 혹은 발암 추정 물질 사태에 발생함에 따라 제네릭 생산 제약사에게 약제 공급 관련 책임을 지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이미 이 과정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운영하고 있는 제도와 차이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약품유통센터에 실시간으로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복 규제라는 주장인 셈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심평원과 정보 연계를 통해 이 같은 공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건보공단이 전달받는 편이 업무효율 면에서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제약사의 행정부담 만 키우는 꼴이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건보공단은 필수의약품 공급유지를 제도 운영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이미 문제를 방지하고자 퇴장방지의약품 제도가 운영 중인데다 심평원 의약품센터를 통해 공급 상황도 관리되고 있다"며 "더구나 제네릭 품목 허가를 신청하겠다는 뜻은 시장에서 이익이라고 판단해 뛰어드는 것인데 공급 의무를 강제화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 역시 "콜린알포처럼 처방 시장에서 높은 금액을 기록하는 품목은 심지어 100개가 넘는 제네릭이 쏟아지고 있다"며 "품목마다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약가협상은 애초 오리지널 개별 제품의 특성을 약가에 녹이기 위한 것으로 적용 약제의 실제가격이나 기업의 영업 비밀을 지켜주고자 협상에서 비밀유지 조항이 탄생한 것"이라며 "하지만 제네릭은 다르다. 동일 성분인 모든 제품에 같은 조건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는 일반적인 협상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반면, 건보공단은 협상 도입은 제약사들의 무분별한 제네릭 등재를 방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심평원 의약품센터와의 업무 중복 문제 제기에 대해선 제도 자체가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RFID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심평원 의약품센터는 의약품의 생산‧수입‧공급 이력 정보를 수집‧관리함으로써 '약제 급여목록에 기등재된 의약품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고자 운영하는 제도"라며 "주로 위조 의약품이나 불법 의약품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어 "건보공단 제네릭 협상제도는 급여 약제의 공급과 품질관리가 핵심"이라며 "보험자로서 약제급여 목록에 등재 전 공급과 품질 관리를 합의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