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안과전문의 학회에서 백내장 수술 후 진균성 안내염이 급증하면서 추정되는 원인 약물에 대해서 질병관리청과 식약처에 문제를 제기했다. 의심이 되는 사례는 작년 9월부터 집중적으로 발생했고, 문제가 제기된 시점은 이미 100건이 넘은 상태였다. 그런데 식약처는 약 한 달이 지나서야 판매 중지 명령을 내렸고, 약 두 달이 지난 후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이 사태를 통해 식약처 및 국내 제약회사의 안전불감증을 짚어보자.
먼저 약물 부작용은 아나필락시스와 같이 투여 후 신속하게 발생하는 알레르기성 부작용을 제외하면 한두사례로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어렵다. 또 개별 의사는 일반적으로 제한된 사례만을 경험하기 때문에 더욱 의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약물 부작용은 개별 사례들을 수집하는 기관의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 개별 의사는 한 두 사례만을 경험하지만, 이런 사례들을 수집하는 기관은 유사 사례들의 빈도를 감시하면서 위험 신호를 발견하고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가 후 부작용 정보를 수집하는 곳은 어디일까? 가장 광범위하게 부작용 정보를 보고받는 곳이 식약처이다. 정확히는 의약품안전관리원에서 허가 후 부작용을 수집한다. 의료인, 환자 등이 보고하는 부작용, 제약회사에 보고된 부작용 등 모든 부작용 정보는 의약품안전관리원에 보고된다. 그런데 100건이 넘는 사례가 발생할 동안 식약처는 이를 알지도 못했다. 진균성 안내염은 매우 중대한 부작용으로서 사실상 10건(늦어도 20건) 내외가 발생하는 시점에서 의심을 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런데 왜 100건 이상이 발생하는 동안 식약처는 아예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이는 안내염 부작용이 의약품안전관리원에 보고가 안됐거나, 또는 보고가 됐어도 의약품안전관리원에서 위험 신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문제가 어느 단계에서 발생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
두번째 의약품 부작용을 수집하는 곳은 제약회사이다. 환자, 의료인 등이 제약회사에 부작용을 보고하면, 제약회사의 안전관리책임자는 이를 검토하고, 또 이 정보를 의약품안전관리원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제약회사의 안전관리책임자 또한 수집되는 정보들을 살펴서 위험 신호를 발견하고 조치를 위해야 한다. 안전성 사고는 제약회사에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에(때로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제약회사일수록 약물부작용 감시부서를 경영과 무관한 독립 부서로서 철저하게 운영한다.
그런데 안내염 100여건 이상이 발생하는 동안 제약회사에는 부작용이 전혀 보고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보고가 됐는데도 안전관리책임자가 의약품안전관리원에 보고를 하지 않거나, 이를 방관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식약처와 제약회사의 약물부작용 감시 시스템이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동안 100명이 넘는 환자들은 안내염으로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고, 일부는 심각한 후유증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식약처는 조기에 위해 신호를 인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작년 11월 안과학회의 문제제기를 받았을 떄조차도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미 100건 이상의 사례가 발생됐는데 역학조사를 한다고 시간을 허비했다. 안전성 조치는 위험이 확증됐을 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감지됐을 때 취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FDA나 유럽의 EMA는 단지 몇 개의 사례로도 위험을 감지하고, 보수적으로 판매중지 조치를 하거나, 의료인들에게 위험 가능성을 알리고 당분간 타 대체약물을 처방하도록 안전성 서한을 발송한다. 그런데 식약처는 한 달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당연히 피해자는 증가했을 것이다.
이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료인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렴 의심 사례들을 보고한 후에도 식약처는 원인을 분석하는 상당 기간 판매 중지를 하지 않았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증가했다. 인보사 사태 때에도 허가 당시의 세포와 전혀 다른 세포가 투여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즉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실리콘 인공유방의 역형성 림프종 위험성을 인지한 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 식약처는 안전에 대해서 불감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식약처에서 일하면서 이런 식약처의 안전불감증을 뼈저리게 보았다. 이를 고발하기 위해 1인 시위까지 했으나,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그리고 식약처는 이런 안전성 이슈가 발생하면 늘 그 책임을 회사에 전가한다. 이번에도 허가를 취소하는 최악의 조치를 했다. 이번 안내염 사태는 의약품 본연의 안전성에서 변동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품질 관리의 부실로 인한 것이다. 일부 NDMA 사태와 같이 교정이 불가능한, 즉 제조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해 예방이 불가능한 원인이 아니었다. 물론 제약회사의 부적절한 품질관리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품질관리에 대한 조치는 해당 제조소에 대한 GMP 취소와 같은 행정 조치가 바람직하지, 제품 자체를 죽여버리는 허가 취소는 적절하지 않다. 품목 허가 취소는 허가 당시 검토한 안전성/유효성에 변동이 생겼을 때 취해야 하는 것이지, 안전성 이슈가 터질 때마다 남발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식약처는 안전성 이슈 등이 발생할 때마다 품목허가를 취소하고, 모든 책임을 회사로 떠넘기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제약회사의 품질관리에 대한 감시의 책임 또한 식약처에 있는데, 왜 식약처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가?
이번 안내염 사태는 국내 약물안전 감시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요, 심지어 증거가 충분한데도 제 때 조치를 취하지 않는 식약처의 안전불감증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이 사태에 대해서 제약회사 뿐만 아니라 식약처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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