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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치매안심병원 운영 "형평성 따질 사안 아냐"

원종혁
발행날짜: 2021-03-31 05:45:58

대한노인신경의학회 석승한 회장 "중증 환자 안전 치명적 문제"
치매안심병원 한의사 필수인력 포함, 의료계가 우려하는 이유

"자칫하면 정신행동이상증세를 가진 중증 치매 환자 관리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단순히 의학과 한의학이라는 형평성 논리로 다룰 사안은 아니다."

한의사를 치매안심병원에 필수인력으로 포함시키려는 '치매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가 지난 29일로 끝이 났다. 메디칼타임즈는 해당 이슈를 놓고 대한노인신경의학회 석승한 회장(원광대산본병원 신경과)을 만나 학계가 강력히 반대 입장을 내놓는데 속내를 들어봤다.

석승한 회장.
배경은 이렇다. 심각한 정신행동이상 증세를 보여 가정과 요양시설에서 돌볼 수 없는, 중증 치매환자들의 단기 입원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치매안심병원 규정.

치매안심병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치매 국가책임제'를 공표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부 정책과제 중 하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치매안심병원 지정을 위한 필수인력 전문과에 '한방신경정신과'를 추가시키면서 한방신경정신과 의사만 있어도 안심병원 지정이 가능하게 만든 셈이었다.

석 회장은 "치매 환자를 케어하는데 있어 한의사를 진료행위에서 배제시켜야 한다고 무조건적인 반대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며 "사안의 본질을 들여다 봐야할 문제"라고 운을 뗐다.

의료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 역시, 중증 치매 환자의 안전과 관련한 문제였다. 치매안심병원의 역할이 초기 단순 치매 환자가 아닌, 중증 치매 관리에 맞춰졌다는 점과 치매 전문 의료진의 교육 커리큘럼 문제 등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석 회장은 "중증 치매 환자를 볼 수 있는 신경과나 정신과 전문의의 교육과정에는 치매 환자의 진단과 치료, 예방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며 "트레이닝 교수 대부분은 치매를 전공하고 오랜기간 진료경험을 가진 분과 전문성(sub-speciality)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의학에서의 치매 환자 트레이닝 커리큘럼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실제 한방신경정신과 스태프의 수도 1~2명 정도에 불과한 실정.

이러한 한방전문의들의 경우, 우울이나 불안 등 주로 외래환자 진료에 국한돼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결국 치매안심병원에서 중점적으로 진료하게 될 중증 치매 환자는 아니라는 설명.

석 회장은 "따라서 근본적으로 한방 트레이닝 과정 자체가 예방, 진단, 치료, 이후의 만성 환자 관리까지 일련의 질환 스펙트럼을 케어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치매안심병원에서 관리하게 될 환자가 중증 치매라는 사실을 되짚었다. 중증 치매 환자라 함은, 인지기능저하와 동시에 심각한 정신행동증상(BPSD)을 가진 환자들을 지칭한다.

이렇듯 BPSD 환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의료진도 신경과나 정신과 의사들 가운데, 오랜기간 치매를 진료한 경험을 가진 인원들이 담당해오고 있다는 것.

석 회장은 "일반 신경과 의료진들도 망상, 폭력성, 치료 순응도가 지극히 떨어지는 BPSD 증세가 심한 환자를 진료하는 것에는 부담감을 가진다"며 "상황은 이러한데 전문성이 떨어지는 한방진료가 치매안심병원의 필수인력으로 참여해 중증 치매를 돌보게 한다면 환자의 안전이나 제공될 서비스의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만드는 꼴"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건강보험체계 의료개념 '근거중심의학'...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 대전제

의학과 한의학에서의 '치료 방향성'도 주의깊게 따져봐야할 부분으로 꼽았다. 중증 치매 환자들은 약물이나 정신치료를 원활하게 시행하는데 제한이 많이 따르는 상황인 것.

이를테면, 피해망상이 심한 환자들은 '본인이 죽을 수도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인해 약물치료에 순응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사제를 적용한다든지 얘기치 못할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까지 고려에 넣어야 하는 셈이다. 그는 "이런 가운데 한의사들의 첩약과 침, 뜸치료를 중증 치매 환자들에게 무탈하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석 회장은 "첩약의 경우 현재 시범사업을 진행중이다. 바꿔말하면 첩약이 치매 환자에 유효성을 아직 입증하지는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며 "건강보험체계에서 약물, 보조치료 등 의료라고 지칭하는 개념은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이하 EBM)'을 기반으로 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한방 첩약이라든지 침치료는, 중증 치매 환자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아직 없다. 그렇다고 한의사가 효과가 입증된 양약을 처방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적용한다는 것은 추후에 제도적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석 회장은 "한의사가 치매 환자를 진료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증 치매 환자를 중점적으로 관리하게 될 치매안심병원을 놓고 짚어야할 문제"라면서 "한의사 단독으로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을 받을 수 있는 필수인력 기준에 들어가는 것은 상당한 우려가 나온다.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추구하는 방향과 질병을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다. 단순 형평성의 논리로만 따질 사안이 아니다"면서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의 질이라고 하는 대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의사 단독 치매안심병원 지정 "의료시스템 백업 없이는 운영 어려워"

한의사 단독으로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해당 개정안에는, 실질적인 운영에도 문제가 따른다고 했다.

석 회장은 "현재 치매안심병원 지원금을 보게되면 복지부가 80%, 해당 지자체 대응자금 20% 정도를 떠안게 되는 상황이다. 지역내 위수탁을 맺게 되는 경쟁 의료법인이 없다면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지자체 기관장이 한방의료법인에 위탁을 지정해주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이유인 즉슨 "당장 요양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한의사만으로는 어렵다. 당직 의료인도 한의사가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의학적인 처치를 못하기에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진료행위에는 제한이 많다"며 "의료진을 비롯한 물리치료사, 의료기사들도 고용해야 하는데 한의사가 이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의료시스템의 백업이 없이는 제대로된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신경과학회 및 유관학회들도 이같은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국민 탄원을 진행하면서 강력한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들 학회는 "치매 전문가와 어떠한 상의도 하지 않고 복지부 단독으로 개정해, 중증 치매환자들의 입원치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생명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회 조사를 짚어보면 치매안심병원에 입원하는 이상행동이 심한 치매 환자의 사망률은 74%, 뇌졸중 발생률은 35% 증가하고 심근경색, 신체 손상, 낙상 등의 위험이 정상 노인보다 현저히 높다. 때문에 진료에는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치매전문가가 꼭 필요한 이유라고 언급했다.

한편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히 인력을 추가하는 것이 아닌, 치매 환자 상황을 고려한 요양급여 조정과 수가 보상 방안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치매안심병원 참여 신청이 저조했던 이유로, 실질적인 운영비 지원 없이 시설비 보강에만 편향돼 있다보니 "전문병동 설치 이후 인력 기준을 맞추기 위한 재정부담이 컸다"고 소개했다.

석 회장은 "치매안심병원 관리가 필수적인 BPSD 치매 환자들은 유독 병동관리가 힘들다"면서 "치매요양병원의 경우 전문 인건비를 비롯한 간호인력 교육, 수급 문제 등 정부지원이 없을 경우 경영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