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 분야를 취재하면서 숫자를 재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임상 논문에서 숫자로 환원된 통계/지표가 실제로 '객관적인 의미'를 담보하는지 아리송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임상이 진행된 후 결과는 수치, 지표로 환원된다. 문제는 자의적인 해석 및 가중치 부여에 따라 현상을 달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 눈에 보이는 '숫자=객관적 의미'로 해석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예상치에 미달하는 경우 사망률, 입원률과 같은 임상 지표를 꺼내는 대신 슬그머니 바이오마커(몸 안의 상태 변화를 측정, 평가하는 생화학적 지표)의 변화를 서두에 올린다든지, 드라마틱한 지표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비교 대상이나 기간을 조정하는 일도 생긴다. 잣대를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소위 '얻어걸리는' 변화가 한번쯤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의약품의 효능/안전성을 담보하는 임상 중에는 종종 '불량 연구'가 섞여있다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이미 허가된 의약품에 대한 추가 임상, 허가를 위해 진행되는 신약 임상에서도 잡음이 생기는 마당에 하물며 일반약과 건강기능식품은 어떨지, 우려감이 먼저 든다고 하면 과한 걸까.
올해 초 보건당국은 해외에서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이지만 국내에서 의약품으로 분류된 5개 품목에 대해 재평가를 예고했다. 많게는 연간 수백억원의 처방액을 기록한 약제들에 대해 그에 걸맞는 실제 효과가 있는지 따져보는 건,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효과/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 의약품은 '약'의 지위를 내려놓는 게 순리다. 재평가 과정에서의 적응증 삭제, 축소 사례 등을 볼 때 과거 조악한 엉터리 임상이 '근거'로 둔갑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제는 재평가 이후다. 전문약이 일반약으로, 혹은 건기식으로 강등된다고 해도 무분별한 복용/소비 패턴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건기식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의약품의 지위로 각인이 돼 있다는 말이다.
최근 오메가3의 심혈관계 보호 효과를 둘러싼 '무용성' 연구 결과를 수차례 기사화한 후 이같은 우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논란에 아랑곳없이 TV 홈쇼핑에선 여전히 다양한 근거를 내세운 오메가3가 불티나게 팔리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제시된 근거의 합리성을 평가하기 어려운 대중들에게 '임상에서 증명'과 같은 단어는 객관적인 효과로 호도될 가능성이 높다.
오메가3는 한 예다. 다양한 건기식이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과 같은 문구로 소비자를 현혹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소비자의 눈에 비친 '건강'과 '기능'이라는 단어는 식품을 의약품의 지위로 올려놓는 마법을 부린다. 각종 임상 논문에서 발췌한 수치, 통계 자료로 무장한 건기식은 소비자들이 거부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찾는게 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인들과의 교류 접점 찾기에 나선 의학학술단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미국소화기협회가 대장염, 크론병 등에 프로바이오틱스의 무분별한 복용 중단을 권고한 것처럼 학회들이 나서 분명한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다.
건기식을 두고 "굳이 안 쓰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인식도 의료진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게 사실. 건기식과 관련해 최근 인터뷰한 대학병원 모 교수는 학회들의 '애매한 입장'이 환자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들이 먼저 각종 건기식 복용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제시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만병통치약과 같은 인식이 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식품이 식품의 지위를, 의약품이 의약품의 지위를 가지는 것이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매년 건기식의 과장, 과대 광고 적발 사례가 수백, 수천 건에 달한다. 한번쯤은 그런 과장에 속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맹신은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