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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판단력에 정확도까지 필요한 '땡시'의 경험

양희수
발행날짜: 2021-08-23 05:45:50

양희수 학생(가천의대 본과 2학년)


본과를 겪은 학생들이라면 모두들 익히 잘 알겠지만, 의과대학에는 '땡시'라는 무시무시한 시험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해부학, 병리학과 같은 기초 과목에서 주로 진행되는데 '땡시'라고 불리는 이유는 교수님이 '땡'하는 종소리를 치게 되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필자의 학교 같은 경우 한 문제 당 약 50초의 시간을 주기 때문에 50초(이 50초는 문제를 알면 꽤 길지만, 문제를 모르면 정말 찰나에 가깝다)에 한 번씩 종이 울리고, 종의 소리에 맞추어 모든 학생이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개요만 듣고 보면 그다지 압박이 심하다거나 악명이 높을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식은 땀이 줄줄 난다. 땡시 문제 같은 경우 과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해부학을 예를 들어 보자면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배운 우리 몸의 장기, 혈관, 신경과 같은 구조물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물어본다. 실제 교수님께서 우리가 실습한 카데바 위에다가 핀과 같은 것을 꽂아 놓고 학생들이 해당 구조물의 이름을 적는 구조이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답지와 필기구를 직접 들고 돌아다니면서 푸는 시험이라니. 타 전공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을 온 나로선 굉장히 인상 깊었다. 학생들이 실습실을 한 바퀴씩 돌면서 자리를 이동하는 모습도,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며 딱딱한 표정을 짓는 교수님의 모습도(그리고 대부분의 구조물을 알아보기 힘든 나의 모습도…) 모두 어색하고 신기한 시험이었다.

또한 문제 당 시간이 철저하게 정해져 있는 시험이다 보니 압박감이 심했다. 한 문제 당 주어지는 시간이 1분이 채 안 되는데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는 별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이 문제를 내가 실제로 배웠는지, 이런 구조물이 실존하는지, 심할 땐 딱 그 구조물 이외의 근처 모든 구조물의 이름이 스펠링까지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던 지. 그런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다 지나칠 때 즈음이면 종이 치고 빈칸이 덩그러니 남겨진 나의 답지와 함께 다음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꼭 풀다 보면 미련이 남아서 시간이 조금씩 남을 때 마다 다시 기억을 상기시켜보려고 노력하는 문제가 생긴다. 처음에는 그나마 기억에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머릿속에서 구조물을 헤집어가며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데 나중에는 해당 구조물이 동맥이었는지, 정맥이었는지, 신경이었는지 분간이 안가서 포기하게 된다. 역시 이럴 때에는 빠른 순간의 판단력과 정확성을 요하는 시험인 만큼 미련 없이 모르는 문제는 넘어가야 한다. 모른다고 해당 문제를 계속해서 떠올리기엔 그 뒤에 문제도 많이 남아 있고 계속 붙잡고 있으면 아는 문제도 못 풀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련은 버리고 얼른 다음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의과대학 생활도 꼭 땡시와 같다고 느껴진다. 빠른 순간 판단력 그리고 그 와중에 지켜야 하는 정확도. 블록 강의를 주로 채택하는 의과대학인 만큼 수많은 과목들이 빠르게 지나가게 된다. 모든 과목을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학습량 때문에 당연히 실수로 가득한 과목도 생기기 쉽다. 그럴수록 미련을 가지긴 보다 종이 치면 얼른 다음 문제로 넘어가서 새로운 마음으로 과목을 시작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