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매출 1조가 넘는 대형 제약사은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사이 국내 제약산업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 제약사의 매출 하락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복제의약품(제네릭) 혹은 특정 진료과목을 특화한 중견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하향세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이로 인해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마련해 매출 하락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2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제네릭 중심 의약품 판매에 의존하던 중견 국내 제약사를 중심으로 전문 의약품 품목 다양성 및 특화 전략, 추가적인 사업 확대, 판매관리비 감축 활동 등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 대유행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기존 제네릭 의약품 생산에 따른 병‧의원 영업‧마케팅으로는 제약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먼저 중견 제약사들은 택한 살아남기 전략은 특화 전략이다.
소화기계나 중추신경계(CNS), 마취‧진통제, 안과 등 다양한 특화 전략으로 코로나 대유행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전문 의약품 처방 시장에서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이뤄내며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다.
소화기계의 경우는 최근 국내 장정결제 시장에서 경구용 제품인 '오라팡'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한국팜비오다.
국내 장정결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태준제약과 경쟁하면서도 출시 2년 만에 대부분의 상급종합병원과 검진센터에서 오라팡을 처방하면서 소화기계 특화 중견 제약사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올해 오라팡의 매출로만 200억원을 설정해놓은 상황이다.
동시에 최근 독일 제약사의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의 국내 공급까지 도맡으면서 소화기 질환 전문 제약사로서의 이미지를 의료계에 심고 있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을 대상으로 영업을 펼치는 환인‧명인‧현대약품 등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 장기화로 대부분의 표시과목별 병‧의원 내원 환자수가 감소세지만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과만은 환자 수가 늘어나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다.
대표적으로 올해 상반기 환인제약은 매출(426억원)과 영업이익(76억원) 모두 상승하면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마취‧진통제 분야를 특화한 하나제약 역시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9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836억원) 11.4% 증가하기도 했다.
특화 전략과 함께 판매 관리비를 대폭 절감, 큰 폭의 영업 손실을 극복하고 흑자로 전환한 중견 제약사도 있다. 명문제약으로 동구바이오제약, 알리코제약, 휴텍스제약 등 CSO로 긍정적인 효과를 보면서 후발주자로 이를 도입한 회사에 속한다.
명문제약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635억→672억원)은 30억원 가량 증가했고 영업이익 역시 18억원이다. 전년 동기(-153억원) 대비 흑자전환 됐다.
지난해 하반기 영업 방식을 CSO로 전환함에 따라 판매관리비가 대폭 절감된 것이 배경이 됐다. 명문제약의 상반기 판매관리비는 294억원으로 전년 동기(397억원)와 비교해 100억원 이상 줄어들었다.
항생제와 호흡기계 제약사, 매출 하락 '캄캄'
하지만 이 같은 특화 전략이나 몸집 줄이기로 효과를 본 중견 제약사보다는 코로나 대유행 장기화로 매출과 영업이익 하락을 면치 못한 기업들이 상당수다.
실제로 메디칼타임즈가 상장 제약사 연결재무제표 기준 2021년도 상반기 실적을 확인한 결과, 많은 중견 제약사들의 매출‧영업이익이 동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상반기와 비교해 매출이 하락한 제약사들의 상당수는 주력 제품들이 코로나 대유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력 품목이 항생제와 호흡기계, 해열진통 소염제 등의 제네릭 전문의약품을 생산하는 제약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셈.
즉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영향으로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등이 집중적인 경영악화를 겪으면서 해당 과에서 주로 처방이 이뤄지는 전문 의약품을 생산하는 제약사들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항생제 매출 비율이 높은 경보제약과 영진약품의 경우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같은 분기 대비 각각 19.9, 14.0% 추락했다. 영업이익 역시 두 기업 모두 전년도와 비교해 큰 폭의 감소를 면치 못했다.
영진약품은 글로벌 사업 주요 품목인 세파계 항생제 매출 감소까지 겹치면서 적자 폭을 더 키웠다는 분석이다.
그나마 경장영양제 '하모닐란'의 매출 상승과 최근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NSAIDS)인 대원제약 펠루비의 제네릭 급여 등재에 성공하면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항생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화일약품과 일성신약 역시 매출이 크게 줄었다. 화일약품은 전년도 상반기 대비 29.8%, 일성신약은 8.3% 감소하면서 개원가가 경영 악화로 인한 매출 감소가 두드러졌다.
여기에 호흡기계 전문 의약품 처방에 매출 상당수를 의지하고 있는 삼아제약도 올해 상반기 24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전년도 상반기 대비 10.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항생제 중심 국내 제약사 마케팅 담당자는 "1분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2분기 들어서는 매출 회복세가 보여야 하는데 코로나 대유행이 더 심해졌다"며 "1분기가 알레르기 철이라 호흡기 환자 수 증가로 매출 회복을 기대했지만 코로나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내부적으로는 전문과목별 품목 다양화와 주력품목 마케팅을 전사적으로 펼치며 애를 써봤지만 당장 눈앞의 매출 추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하소연 했다.
"신약 개발만이 살길…" 품목 다양화 사활
결국 중견 제약사들도 살아남기 위해선 R&D 전략을 통한 특화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매출 적자를 감수하며 최근 중견 제약사들도 개량 신약 등의 개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내 병‧의원 처방시장에서 '안과 전문'으로 통하는 삼천당제약의 경우 올해 상반기 매출은 810억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859억원)과 비교해 근소한 매출하락을 보였지만 영업이익 면에서는 큰 폭의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이는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3상이 진행 중으로, 2023년 하반기 미국·일본에서 허가를 취득할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알리코제약도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657억원을 기록해 전년 같은 시기(631억원)보다 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 면에선 44%나 곤두박질 쳤다. 이는 연구개발비 등에 적극적인 투자한 것이 그 배경이 됐다.
알리코제약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해와 비교해 연구 개발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져 영업이익이 하락한 것"이라며 "현재 의약품 제형연구에 초점을 맞춰 일반 제네릭 의약품, 특화 제네릭 및 개량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제네릭 중심 판매에 의존하던 중소 제약사가 살아가기 위해선 개량 신약 개발 투자 등 경쟁력 제고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제네릭 의약품의 품질 제고를 위해 시행된 '공동 생동 1+3 제한' 등을 필두로 한 제도적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이태진 보건대학원 교수는 "공동 생동 1+3 제한을 위한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일부 중소제약사의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다만, 장기적으로 제약 산업의 건전한 성장 및 제네릭 의약품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