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 속에서도 국내 제약사들의 든든한 매출 버팀목으로 여겨졌던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
하지만 정부가 오는 10월 국내 주요 대형 제약사들의 만성질환 치료제 품목까지 약가 인하를 예고하면서 큰 태풍이 불고 있다.
이로 인해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에 따른 매출 타격을 최소화하고자 벌써부터 묶음처방 유도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영업‧마케팅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8일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사용량-약가 연동 협상(PVA, Price-Volume Agreement)이 완료된 품목을 대상으로 10월 약가 인하를 적용할 예정이다.
현재 복지부는 10월 약가 인하를 적용할 품목을 사실상 확정하고 주요 의료단체에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진행 중인 상황.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10월부터 계획된 약가 인하가 적용되는 것이 확정적인 상황이다.
이 가운데 약가 인하 대상에 주요 국내사들의 매출 버팀목이 되고 있는 고혈압, 당뇨 등 주요 만성질환 치료제들이 대거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은 변함없이 상승세가 이어져 청구액이 급증하면서 결국 사용량-약가 연동에 따라 보건당국의 약가 인하 대상에 포함되게 된 셈이다.
대표적인 품목을 꼽는다면 한미약품의 고지혈증 치료제 로수젯(에제티미브+로수바스타틴)이다. 의약품 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로수젯의 청구액은 2019년 810억원에서 2020년 991억원으로 급증한데 이어 올해 상반기 534억원을 기록해 상승세를 유지 중이다.
마찬가지로 고지혈증 치료제 시장에서 로수젯과 경쟁 중인 한국MSD의 아토젯(에제티미브+아토르바스타틴)도 약가 인하 대상이 들어갔다.
아토젯의 경우도 2020년 747억원, 올해 상반기 371억원을 기록하는 등 제네릭 품목의 등장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 중이었지만 약가 인하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에 같은 처방 시장에서 경쟁 중인 녹십자의 다비듀오, 유한양행 로수바미브, 대웅제약 크레젯 등도 10월 약가 인하가 예정된 상태다.
고혈압 치료제 중에선 보령제약의 듀카브(피마사르탄+암로디핀)가 약가 인하 대상 목록에 포함됐다. 최근 중소 제약사를 중심으로 듀카브 후발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데에 약가 인하까지 겹친 셈이다.
당뇨 치료제 중에서는 최근 청구액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LG화학의 DPP-4 억제제 계열인 제미메트가 약가 인하를 맞게 됐다. 마찬가지로 동아에스티의 슈가메트도 10월 약가 인하가 예정돼 있다.
이를 두고 제약업계에서는 약가 인하에 따른 매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약품의 경우 지난 주 로수젯의 저용량 제품 식약처 허가를 받으면서 처방 선택지 넓힌 바 있다. 일부 제약사는 내부적으로 거래처 확대 혹은 묶음처방 유도 등 영업‧마케팅 전략 강화책을 마련 중이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고혈압 약제와 같은 만성질환 치료제는 제품 신뢰도가 처방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오리지널 로열티와 제품력이 중요하다"면서 "이러한 이유로 약가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장 규모나 매출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다만, (약가 인하) 취지는 좋으나 제약회사가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로 기업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국내 제약사는 "기존의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선 영업‧마케팅을 강화하는 방법 뿐"이라며 "주요 만성질환 치료제 매출이 약가 인하로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거래 병‧의원을 늘려가거나 묶음처방 유도하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주요 만성질환 치료제를 처방하는 임상 현장에서는 제약사들의 영업‧마케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겠지만 이에 따른 처방 변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내과의사회 임원은 "약가 인하에 따라 환자의 부담이 줄었다는 점을 포인트로 한 제약사의 영업‧마케팅이 줄을 이을 것"이라면서 "환자 입장에서는 약가 부담이 줄어든다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기존 처방을 받던 제품군을 변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주요 오리지널 품목의 약가 인하로 인해 제네릭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있을 것"이라며 "의사 입장에서는 같은 약이면 오리지널을 선호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