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공지능(AI)의 효시로 미래 의학의 핵심으로 꼽히던 닥터 왓슨이 역사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IBM이 지속적인 적자를 못이기고 사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의료 AI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혔던 세계적인 공룡 기업조차 백기를 든 만큼 업계에 파장도 상당한 상황.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왓슨을 잡겠다며 공을 들이고 있는 토종 AI '닥터앤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조원 투입된 의료 AI 닥터 왓슨 애물단지 전락
3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IBM이 닥터 왓슨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 인공지능 사업부 '왓슨 헬스'를 포기하고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확한 매각 시기와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매수자는 미국계 사모펀드 프란시스코파트너스로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협상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세계 최초로 의료 AI를 내놓으며 산업을 주도하던 IBM이 사업부를 통째로 시장에 내놓으면서 인공지능 업계도 술렁이고 있다. 산업의 지속성과 성장성에 의문을 던질 만한 대형 사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IBM은 왓슨에 대단한 공을 들여왔다. 2015년 왓슨 헬스 사업부를 출범한 이래 환자 데이터 기업 트루벤헬스애널리틱스와 의료 영상 기업 머지헬스케어 등과 빅딜을 진행하며 몸집을 크게 키워놨던 것이 사실. 이렇게 인수합병에 들어간 돈만 40억 달러(약 4조 8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7년간 인재들을 불러모으고 시스템 고도화에 투입된 자금도 만만치 않은 상황. IBM의 공시 내용들을 종합하면 왓슨에 투입된 비용은 총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 전체 인수 비용을 1조원대로 예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IBM은 십조원 이상을 손해보며 헐값에 사업부를 털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IBM이 왓슨을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산업계와 금융업계 등에서는 사업성 악화가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말 그대로 수조원이 투입된 사업이지만 실제 제품이 상용화된 후 기대보다 매출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IBM 연간 보고서를 보면 왓슨의 대표 품목인 왓슨 포 온콜로지의 연 매출은 10억 달러(1조 2천억원)으로 추산된다. 개발 비용과 함께 왓슨 사업부를 유지하고 보수하는데 연 13억 달러(1조 5천억원)는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계속해서 적자를 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적자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IBM은 왓슨 포 온콜로지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최소 연 100억 달러의 매출이 문제없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연 10억 달러 남짓의 매출이 전부라는 점에서 사실상 사업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이렇듯 20조원이 퍼부었던 세계적 공룡 기업의 도전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의료 AI 분야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왓슨을 도입한 의료기관들이 꽤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관심사다.
실제로 왓슨은 상용화 초기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혁신적 의료기기로 꼽히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모은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길병원이 처음으로 이를 들여온 이래 부산대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건양대병원, 조선대병원, 전남대병원까지 주요 대학병원들이 줄이어 왓슨을 도입했다.
일부 대학병원은 국내 임상 사례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계약을 포기한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지금도 이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이들 병원으로서는 당장 유지 보수에 지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토종 의료 AI 닥터앤서 영향 불가피…사업성 담보가 관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해 고도화를 진행중인 의료 AI 닥터앤서의 미래다.
닥터앤서는 왓슨을 잡겠다는 목표에 따라 이른바 디지털 뉴딜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와 기업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AI.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정부 예산 364억원, 민간 자금 124억원 등 총 488억원이 투입돼 1차 모델 즉 1.0이 개발됐으며 2024년을 목표로 차세대 모델인 2.0이 고도화를 진행중인 상황이다.
민관 합동의 국가적 프로젝트인 만큼 규모도 엄청나다. 1.0 개발에만 해도 고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기관을 비롯해 의료기관 26개, 정보통신기업 22개에서 총 1962명이 참여했고 2.0 개발에도 의료기관 30개와 정보통신기업 18개가 함께하고 있다.
주된 목표는 역시 진단 보조와 치료 지원을 돕는 AI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다. 왓슨을 모델로 한 만큼 사실상 줄기가 같은 셈. 특이점이 있다면 왓슨은 대학병원을 타깃으로 했다면 닥터앤서는 1~2차 의료기관, 즉 개원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맞춰 사업단은 당뇨와 고혈압, 치매, 피부질환 등 개원가에서 주로 보는 질환에 대한 의료 AI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환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만성질환 등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아직까지 성과는 나쁘지 않다. 앞서 진행된 닥터 앤서 1.0 사업성과 보고를 보면 치매의 경우 과거 최대 6시간의 진단 시간이 1분으로 단축됐으며 수십분 이상이 소요되던 심장 CT 판독 시간도 1∼2분으로 줄였다.
진단 정확도도 상당 부분 진척을 보였다. 평균 74∼81%의 대장 용종 판독 정확도를 92%로 향상시켰으며 전립선암은 수술 후 재발 예측진단의 정확도를 81%에서 95%로 늘리는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성능이 아닌 사업성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인 IBM조차 사업성이 없다며 의료 AI를 던져버린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A헬스케어 기업 임원은 "왓슨이고 앤서고 문제는 결국 어떻게 사업성을 담보할 것이냐는 것"이라며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돈이 안되면 사업을 유지할 수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IBM과 같은 유동성이 좋은 기업조차 두손 두발 다 들고 누워버린 상황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며 "일단 단기적으로는 의료 AI의 사업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뜻 아니냐"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같은 문제들은 상당 부분 공감을 얻고 있는 부분이다. 4차 산업 혁명을 타고 의료 AI분야는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지만 건강보험 허들에 막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주식 공개를 통해 상장까지 이른 JLK와 뷰노, 딥노이드 등 의료 AI 기업들도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
IBM은 그나마 상황이 좋았다. 왓슨 사용료로 환자들에게 1000 달러(120만원) 수준의 비용을 받아왔기 때문. 그럼에도 적자를 피하지 못해 사업부를 매각하고 있는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결국 수백억원의 개발비가 들어간 토종 AI가 왓슨보다 더 좋은 성능을 낸다고 해도 사업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이상 계륵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왓슨을 도입했던 B대학병원 교수는 "도입 몇 년만에 왓슨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국내 환자에 대한 진단 정확도 문제도 있었지만 결국 투입되는 비용이 그대로 적자가 됐기 때문"이라며 "닥터앤서가 나온다고 해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그는 "뷰노나 루릿 등을 봐도 우리나라의 의료 AI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기술력이 어마어마하다"며 "결국 이 기술력을 어떻게 돈으로 바꿀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