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처음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엔데믹(풍토병 관리)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에서 방역 조치를 해제하고 나선 가운데 캘리포니아주가 정상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천명하면서 방역 정책의 급진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의 수요를 창출했던 접종 의무화 내지 권고가 엔데믹에서는 독감처럼 개인 자율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 방역 해제 조치에 나선 유럽 등의 사례를 따라 국내에서도 방역 조치가 다소 완화됐던 전례를 보면 국내도 해외의 엔데믹 전환 여부의 영향권에 놓일 전망이다.
무엇보다 다국적 제약사의 치료제 및 백신의 상용화 이후에도 국내에선 여전히 백신, 치료제 임상이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임상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 엔데믹 사례에서의 방역 정책 변화 사례 및 코로나19의 엔데믹 전환이 국내 임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엔데믹 선언, 무엇이 바뀌나
17일(현지시각) 미국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코로나19 발생에 대한 예방과 신속한 대응을 강조하는 엔데믹 전환을 발표했다. 주지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위기 단계를 지나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할 단계"라고 말했다.
다만 캘리포니아주는 방역의 완전 해제와 같은 급진적인 정책을 당장 도입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바이러스가 여전히 지역사회에 존재하지만 백신 접종에 따른 면역력 증가 또는 변이 발생에 따른 치명률 감소 통해 관리가 가능해지는 풍토병 단계에 도달한다. 보통 바이러스는 사망이나 입원과 같은 치명률을 낮추는 쪽으로 숙주와의 공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는데 이런 경우 엔데믹 전환이 가능하다.
실제로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2년이 지나면서 각종 백신의 상용화 및 보급, 4차에 이르는 부스터샷 접종이 이뤄지고 치명률이 낮아진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는 변화가 발생한 바 있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가 엔데믹을 선언한 첫번째 주이지만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달 말부터 스페인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엔데믹 전환 검토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코로나19 사망률 하락을 들어 질병이 풍토병으로 여겨야 하는 지 여부를 고려할 때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엔데믹 전환 시 가장 큰 변화는 개인 차원의 관리다. 말라리아로 연간 사망하는 인원은 6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풍토병으로 관리되고 있다. 해외에서 말라리아와 같은 풍토병에 대해 사회적 거리두기부터 밀접접촉자의 격리 등이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엔데믹 전환 시 개인적 차원의 검사 및 치료 진행으로의 변화가 예상된다.
김우주 백신학회 회장은 "2010년 종식이 선언된 신종플루 역시 치료제 및 백신의 도입으로 사실상 엔데믹으로 관리되고 있다"며 "2003년 사스는 저절로 사라졌고, 메르스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지만 중동에서 풍토병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는 백신과 치료제가 나왔지만 시스템적으로 쉽게 처방 및 복약이 가능한 그런 단계까지 도달하진 않았다"며 "전염병마다 특성이 다르고 백신 수급 등의 상황이 다를 수 있어 어떤 기준만 충족하면 엔데믹이 될 수 있다는 그런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감염학회 관계자는 "바이러스가 숙주와 공생을 택하는 방향으로 변한 사례를 볼 때 향후 추가 변이가 발생해도 오미크론 대비 더 치명률이 올라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며 "다만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변이 발생이 쉽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고 제시했다.
17일(현지시각) 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 역시 코로나19 종식 및 풍토병 전환에 무게감을 더했다. 스테판 CEO는 "코로나19가 팬데믹의 최종 단계라는 보는 것은 타당한 시나리오"라며 "향후 변이가 발생해도 오미크론 대비 덜 치명적일 확률이 80%이고 점점 덜 치명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독감처럼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인류와 함께 살아갈 것으로 본다"며 고령층이나 중증 감염 위험군에서의 지속적인 부스터샷 접종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줬다.
▲엔데믹 전환 시 백신 접종 수요 감소 가능성
법정감염병은 위험도 및 발병 시 대응 방식 등에 따라 1∼4급으로 나뉘는데 코로나19는 1급으로 관리되고 있다. 국내의 오미크론의 치명률(1월 24일 기준)은 0.16%로 델타 변이 대비 약 1/5에 머무른다. 독감의 치명률 0.1%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미접종자의 치명률은 0.3% 수준이지만 2차 접종 완료자는 0.08%로 독감 수준에 머무른다. 게다가 40세 이하에서 치명률이 급감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엔데믹 전환 시 백신 접종 대상군이 고령층 및 감염 시 고위험군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김우주 백신학회 회장은 "엔데믹 전환 시 특정 군에만 접종한다고 하는 지침은 없다"며 "이는 사회적인 합의 영역이지만 최근의 사망 사례가 고령층에 집중된 사례를 보면 고령의 고위험군에 우선 접종하는 방향이 고려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재도 진행중인 국내 코로나 치료제, 백신의 타격 가능성이다. 주요 다국적 제약사들은 백신 상용화에 1년 전 성공한 데 이어 오미크론 전용 백신으로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마당에 엔데믹 전환 시 접종 수요층의 급감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SK바이오사이언스와의 백신 생산계약을 지난해 말 종료하면서 공급에 있어 완급을 조절하는 모습이다. 또 러시아산 백신 스푸트니크V와 코비박의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 절차 역시 잠정 중단된 상태다. 국내에서 노바백스사 백신까지 총 5종이 승인된 데다가 4차 부스터샷은 고령자 및 면역저하자, 요양병원·시설 입원·입소자, 종사자 등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1월 28일 기준 현재까지 식약처가 임상시험을 승인한 코로나19 치료제‧백신은 총 39품목이며 이중 치료제는 28품목, 백신은 11품목에 달한다.
임상 승인된 코로나19 치료제(28품목) 중 국내 개발 치료제는 21품목이며, 이 중 14품목이 현재 임상시험 진행 중이고 7품목은 해당 임상시험이 종료됐다.
그 외 국외 개발 치료제는 7품목으로 이 중 3품목이 현재 임상 진행 중이고 4품목의 임상시험은 종료됐다. 임상 승인된 코로나19 백신(11품목) 중 국내 개발 백신은 10품목이고 국외 개발 백신은 1건이며, 현재 모두 임상시험 진행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백신 임상이 여전히 1/2a상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2년간 임상 대상자 모집에 난항을 겪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용화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치료제 영역에선 변이에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 팍스로비드가 상용화됐다. 중증 및 사망 이환 예방률 89%을 기록하고 경구제인 까닭에 치료제는 이미 완성단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
백신 역시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방식부터 mRNA, 유전자재조합까지 다양한 방식이 상용화돼 국내 백신의 승인 이후에도 개발비 보전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령자에 대한 제한적 접종이 이뤄질 경우 국내 늦깎이 백신들의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엔데믹 전환 소식이 나오고 있지만 엔데믹은이 바이러스의 종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와의 공존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 차원의 임상은 계속 진행된다"고 밝혔다.
그는 "독감을 예로들면 지금도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백신 품목이 나오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향후 나타날 수 있는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플랫폼 기술을 확보한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백신 개발은 (상업적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지속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오미크론 예방효과를 테스트 중에 있고, 오미크론 전용 백신도 연구개발 단계에 있다"며 "오미크론 변이 발생으로 현재 개발중인 백신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다만 백신 개발이 늦어진 만큼 상용화 이후 개발비는 투자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시선도 나온다.
A제약사 관계자는 "그간 다양한 제약사들이 코로나 치료제, 백신 개발이라는 언급으로 주가 부양에 나선 바 있다"며 "소위 후보물질 언급 정도만을 두고도 주가가 요동친게 최근 1~2년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상, 1상까지는 큰 비용이 안들어 가지만, 실제 해외 환자를 모집해 3상을 진행한 업체는 개발비가 최소 100억원 단위로 훌쩍 뛴다"며 "오미크론 이후 추가 변이가 발생한다면 국내 임상이 지연될 수 있고 상업화에 성공해도 투자비 환수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매몰비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향후 신종 감염병 출현에 대비한 백신 플랫폼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로 볼 것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며 "막대한 개발비가 소요된 만큼 수요 급감을 불러올 엔데믹 전환은 코로나 치료제, 백신 개발 업체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