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의료기기 유통 구조의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간납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 단위 조사에 들어가면서 기업들은 물론 의료기관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실태 조사의 핵심이 의료기관과 간납사간 특수 관계에 맞춰져 있기 때문. 만약 조사 과정에서 불공정한 부분들이 나온다면 의료기관 또한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유통 구조 개편 방안 속도…간납사 정조준
18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복지부 등 정부가 의료기기 유통 구조 실태 파악을 목적으로 전국 단위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의 A병원 보직자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의료기기 납품과 관련한 유통 구조와 비용 등에 대한 자료 협조 요청이 들어온 것은 맞다"며 "우리 병원의 경우 재단 차원에서 이를 관리하고 있어 재단 사무국과 협조해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우리 병원이야 재단에서 산하 의료기관 전체를 관리하고 있는데다 특히 별도의 대형 기업을 통해 별도 관리하고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아마도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 병원을 잘 되고 있는 일종의 대조군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복지부를 중심으로 하는 의료기기 유통 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축이 되는 TF팀은 의료기기 기업들은 물론 일선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 간납사 업계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통 구조에 대한 실태 파악에 나선 상태다.
일단 TF팀은 의료기기산업협회를 통해 간납사 실태에 대한 기업들의 의견과 불공정 계약 형태 등의 기초 자료를 확보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자료는 의료기기산업협회가 지난해 10월 전국 회원들을 대상으로 의료기기 유통 구조 불공정행위에 대한 설문 조사가 기반이 됐다.
당시 협회는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간납사나 의료기관의 과도한 제품 할인율 요구 내용이나 담보 미제공 실태, 대금 결제 지연 사안 등에 대한 대규모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의료기기산업협회는 이러한 자료를 기반으로 올해 1월 최종 보고서를 확정해 별도의 협회 의견을 첨부해 TF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의 내용은 대외비로 지정됐지만 임원진 등에 따르면 총 397개 의료기기 기업들이 간납사로부터 요구받은 불공정 사례들을 낱낱히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 397개 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48.6%가 간납사로부터 제품 할인을 요구받았다고 답했으며 52.4%는 간납사와 계약서 한장 없이 물건을 납품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또한 일부 기업들은 무려 제품 가격의 30%이상의 할인을 요구받은 사례들을 보고했고 일부는 1년 넘게 대금을 지연해서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유철욱 회장은 "지난해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와 협회 차원에서 마련한 개선안 등을 더해 국회와 복지부에 전달한 상황"이라며 "이와 별도로 복지부의 요청에 따라 전국에서 운영되는 간납사 현황도 취합해 전달했다"고 전했다.
전국 단위 의료기관 전수 조사…"올해 안에 결판날 것"
더욱 주목되는 부분은 TF팀이 이러한 자료를 기반으로 전국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러한 간납사의 행태들이 과연 단독으로 이뤄진 것인지 혹은 의료기관의 요구 등에 의해 공모된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수순.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고영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적한 사안에 따르면 전국 30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 중 38.6%가 가족 등 특수 관계인이 운영하는 간납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B대 부속병원은 병원 설립자의 첫째 아들이 병원장을, 둘째 아들이 간납사를 운영하며 특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전체 매출의 77.9%가 특수 관계에 있는 이 병원으로부터 나왔다.
또한 매출 규모가 390억원에 달하는 C간납사는 병원 재단 이사장 등 특수 관계인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모든 수익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복지부와 TF팀은 이러한 의심이 드는 전국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 151곳에 대해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이러한 특수 관계 여부를 파악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평원과 함께 일부 종합병원과 간납사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인 것은 맞다"며 "지난해 국감에서 지적된 사안으로 TF팀 등을 통한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 마련은 이미 예고했던 사안"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정부가 간납사와 의료기기 기업들간의 관계를 넘어 의료기관과의 특수 관계를 파헤치면서 전국 의료기관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만약 국감 등에서 지적된 것과 같이 특수 관계에 의한 일감 몰아주기 등이 실제로 적발될 경우 간납사와 더불어 의료기관 또한 처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B병원 원장은 "재단과 대학 본부 차원에서 이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자체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지분율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 등이 없다는 점에서 어느 부분까지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 애매한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계열 병원 전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재단이나 대학 차원에서 일정 부분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병원은 단 한곳도 없을 것"이라며 "따지고 보면 이지메디컴 등도 서울대병원에서 스핀 오프한 기업인데 과도한 불법 행위가 없다면 이 부분까지는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산업협회 등 기업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볼때 올해 안에 의료기기 유통 구조 개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 정부 입장에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다 국회와 정부가 동시에 나선 일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겠냐는 기대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유철욱 회장은 "지난해 복지부 장관이 직접 개선을 약속한 사안이고 국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올해 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또한 윤석열 당선인 등과도 대화를 끝낸 사안이고 협회 차원에서 정부와 긴밀하게 미팅을 가지며 논의중인 사안인 만큼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