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에서 간호법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간호법은 그 자체로 직역 간 갈등을 조장하는데다가, 법리적인 오류를 내포하고 있으며 입법 및 이를 홍보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3일 대한의사협회 간호단독법 저지 비상대책특별위원회는 '간호단독법 문제점 및 대체 방안 마련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간호법의 문제점과 대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엔 간호법에 반대하는 10개 의료단체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문석균 연구조정실장은 대한간호협회가 간호법의 당위성으로 주장하는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봤다.
문 연구조정실장은 "간협이 제정 당위성으로 드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간호법이 없다'는 주장은 조사 결과 거짓으로 판별됐다"며 "간협 신경림 회장의 '살인적인 노동 강요로 간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고문의 경우, 수사 결과 그 원인이 간호사 내부의 태움 문화 때문으로 드러났다"고 반박했다.
현행 의료법은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도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간협은 지난 1월 보도자료를 통해 "현행 의료법은 1914년 이미 제정된 '산파규칙'과 '간호부규칙'을 1944년
'조선의료령'으로 통합했다"며 "일제는 독립간호법 체계를 붕괴시켰으며 그 잔재인 의료법을 폐기하고 간호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문 연구조정실장은 "해당 보도자료는 대한제국의 의료인 종합 교육 체계인 '대한의원관제' 대신, 일제치하 조선총독부에서 공포한 간호사・조산사 교육 규정인 '산파규칙', '산파시험규칙'을 독립 간호법 체계로 주장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일본을 따라 하자고 주장하는 간협이야말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구태를 보이고 있다"고 규탄했다.
간협이 지난 1월 발표한 정책제안서를 보면 간호법이 단독 간호의료기관 개설의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 제안서는 간호사 중심 '통합 간호간병돌봄센터'를 도입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ICT 기반 '협진'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협진의 뜻을 고려했을 때 간호법이 단독 간호의료기관 개설과는 무관하다는 간협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
문 연구조정실장은 "다른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지원 여부는 도외시 한 채, 간호사에 대한 지원만을 추진하겠다는 주장은 매우 직역이기주의적이다"며 "간호법이 제정될 경우, 기존의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유명무실될 가능성이 높고, 간호사보다 더 열악한 의료보조인력에 대한 지원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간호법의 문제점으로 ▲법률간 체계적 정합성 부족 및 보건의료정책 근간 붕괴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에 따른 직역 간 갈등 증폭 ▲분절적 의료행위로 인한 국민건강 위해성 ▲간호사 단독 의료기관 개설 시도로 인한 국민건강 위해성을 꼽았다.
또 그 대안으로 ▲보건의료인력 통합 지원대책 마련 ▲간호사 처우개선을 위한 간호사 관련 수가 인상 ▲현행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정비 및 활성화 ▲통합적 보건의료인력 면허 및 자격 관리 체계 확립을 꼽았다.
문 연구조정실장은 "다양한 보건의료인력의 근무환경 실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현재 원가보전율이 38.4%에 불과한 간호관리료를 최소한 원가보전이 가능한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처우개선 방안. 입원료를 인상해 그 인상분을 간호관리료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전성훈 법제이사는 간호법 입법 이전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간호법 입법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
전 법제이사는 "간호법은 다른 법률에 우선 적용되는 특별법으로 기존 일반법 적용대상과 특별법 적용대상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특별법이 유리한 내용은 특별법 적용 대상에겐 특혜고, 기존법 적용 대상에겐 차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의료법 적용대상인 의사들뿐만 아니라, 특별법인 간호법안 적용대상인 80만 명 회원의 간호조무사단체, 120만 회원의 요양보호사단체, 4만 회원의 응급구조사단체 등이 간호법을 강력히 반대하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입법안의 자체도 다른 법률 및 의료실무와 내용상 충돌한다고 분석했다. 특정 조항을 의료법에서 그대로 베껴오면서 불리한 내용은 수정한다거나, 법률상 용어와 실무상 용어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그 내용이 의료법과 충돌하거나, 법적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는 규정이 있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
입법 과정에서 이를 홍보하는 것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OECD 38개국 중에서 간호사 관련법이 '단독법' 형태로 존재하는 나라는 11개국이고, 없는 나라가 27개국인데 간협은 우리나라에만 간호법이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을 겨냥한 지적이다.
전 법제이사는 "입법안을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과정에서도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수정하야 한다"며 "간호법은 내용 대부분이 의료법 중 간호사에게 적용되는 내용을 그대로 베껴 간호사에게 불리한 내용만 바꾼 것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간호법 이해당사자인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역시 간호조무사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것을 들어 해당 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전동환 기획실장은 "간호법은 의료기관 밖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타 보건의료 직종 간 업무범위 충돌 우려가 다분하다"며 "법령에 규정된 간호인력 기준 무력화하는 등 다른 직역을 보조 인력화해 갈등이 심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간호조무사 역시 간호법 적용대상임에도 간무협의 요구사항인 간호조무사 전문대(2년제) 양성,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법정단체 인정 등을 수용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응급구조사들의 우려도 다르지 않았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박시은 사업이사는 간호법은 간호사의 의료행위를 무분별하게 확장해 특정 직역의 사회적 필요성을 상실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박시은 대한응급구조사협회 사업이사는 "간호법은 현 보건의료인의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며 "오히려 약소 직역의 사회적 필요성과 업역을 축소해, 인력 부족 문제를 더욱 촉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보건의료 인력의 부족 문제해결과 의료제도 발전을 위해선 간호법이 아닌, ▲주요 보건
의료인에 대한 구체적 업무분장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통한 현 보건의료인에 대한 종합계획 ▲과학적 양성계획 및 수급을 통한 공정한 인력배치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지방 자치단체의 정책적 전문성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법조계는 간호법이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의 업무 범위와 한계를 규정하는 것에서 체계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고 봤다. 실제 보건의료현장의 여러 의학적 상황과 조건들이 맞물려 업무가 수행되는데 관련 구체적 업무 범위를 성문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법인 세승 조진석 변호사는 "법률은 가능한 범위에서 현실의 사실관계를 반영해야 하는데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의 업무범위를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각 직역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겠다는 간호법의 내용은 해당 법안을 통해 입법목적과 반대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료법학회 엄주희 학술이사는 "간호사의 처우 개선만을 위한 간호법을 독립적으로 규율한다면 직역 간 갈등 유발과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며 "간호법 신설로 직역 간 갈등을 유발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구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재배치하고 활성화시켜 전체 보건의료 체계와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