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경증질환 감축 인센티브 시범사업이 조만간 공개모집을 거쳐 본격화될 전망이다.
중증질환 중심인 상급종합병원 내부에서 경증환자 단계적 30% 감축의 실효성을 제기하고 있어 시범사업 공회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0일 메디칼타임즈 취재결과, 수도권과 지방 상급종합병원은 보건복지부의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사실상 참여 거부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을 보고한 바 있다.
상급종합병원 대상인 시범사업 명칭은 중증진료체계 강화이나 본질은 외래환자 쏠림 해소를 위한 경증환자 축소이다.
복지부는 오미크론 여파로 3개월째 미뤄진 시범사업 공개모집을 이번 달 중 실시할 방침이다.
시범사업 모형을 살펴보면, 경증환자 대상 외래 내원일수 감축 최소 기준으로 1차 년도 5%, 2차 년도 10%, 3차 년도 15% 단계적 축소를 보상 요건으로 설정했다.
■복지부, 3년간 경증환자 30% 감축 목표…성과별 보상 차등화
복지부는 외래 내원일수 최소 15% 감축 이유에 대해 2021년 코로나 사태로 인한 월별 외래 최대 감소량이 15%인 점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감소된 외래 진료 량에 대해 병원별 평균 외래 내원일당 진료비와 감소된 외래 내원일수를 산출해 비급여 진료 손실액 포함 연간 보상금액을 설정해 지급한다.
성과평가 결과 목표치 95% 초과 달성 시 보상금 100% 지급, 90~95% 미만 90% 지급, 85~90% 미만 80% 지급 순이며 50% 미만은 미지급이다.
참여병원의 질환 조정 노력을 반영해 보상금액 50%를 중증진료 강화 지원금으로 시행 초기 지급하고, 나머지 50%는 1년 진료 후 성과에 따라 정산할 예정이다.
겉으로 보면, 경증환자 외래를 줄인 만큼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점에서 솔깃한 제안이다.
그러나 의료현장 반응은 차갑다.
상급종합병원들은 시범사업 모형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다는 입장이다.
시범사업 3년 동안 외래 경증환자 30% 감축은 현실성이 떨이진다는 반증이다.
■상급병원들, 경증질환 10% 미만 "시범사업 기준 현실성 결여"
수도권과 지방 상급종합병원 모두 경증질환 외래 환자가 10% 미만인 상황에서 시범사업 참여의 동기부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권 A 상급종합병원 보직 교수는 "외래 경증질환 환자 비율이 한자리수인데 3년간 30%를 줄이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면서 "중증질환군에 치중한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과 경증 외래환자 의료질평가지원금이 없는 상황에서 무슨 근거로 10%, 15% 감축 모형이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경기지역 B 상급종합병원 경영진은 "시범사업 인센티브를 감안하면 혹할 수 있으나 경증환자군이 5% 미만인 상황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릴 필요도 없다"며 "그나마 남은 경증질환은 전공의 수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개원을 준비하는 젊은 의사들이 경증질환과 중증질환을 모두 경험해야 한다"고 시범사업 평가기준을 꼬집었다.
복지부와 상급종합병원의 현격한 시각차는 어디에서 발생한 것일까.
상급종합병원은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대상 질환을 기준으로 경증질환을 보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철 결핍 빈혈과 급성 림프절염 등 6개 질환이 추가됐고, 이명과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등 3개 질환이 제외되면서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 적용 경증질환은 총 103개이다.
이들 질환으로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외래 진료 시 약제비 비용은 50%, 40%로 높아진다. 이를 제외한 중증질환 외래환자의 약제비 본인부담률은 30%이다. 외래환자 의료질평가지원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반면, 복지부는 2019년 3기 상급종합병원 전문진료질병군 비율을 기준으로 삼았다.
상급종합병원 42개소의 전문진료질병군 평균 비율은 44.83%로 최소 32.35%에서 최대 72.49%이다.
■복지부·상급병원, 경증질환군 기준 시각차 "의료현장과 괴리"
서울대병원 등 빅5 병원의 전문진료질병군은 54.35%이며, 이를 제외한 수도권 병원은 50.20%, 지역권 병원은 45.10%이다.
이를 토대로 최소 30% 이상 경증질환 환자군이 있다고 판단하고 3년에 걸쳐 5%, 10%, 15% 등 최대 30% 외래환자 감축 지표를 설정한 셈이다.
호남지역 C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지방 상급종합병원의 경증환자 비율은 10% 미만으로 수도권과 차이가 없다. 더욱이 내년도 새로운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위해 중증질환군을 높이는 상황에서 외래환자 30% 감축은 현장과 괴리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제고를 위해 종합병원 참여를 검토 중이다.
일부 종합병원은 인센티브 당근책을 의식해 시범사업 참여 의지를 복지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시범사업 참여 상급종합병원 수가 예상보다 저조하면 종합병원 확대를 검토할 수 있다. 중증질환 중심 상급종합병원 본연의 역할과 지역 의료기관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평했다.
또 다른 문제는 진료 협력체계 강화이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 경증환자를 병원과 의원급으로 내려 보낼 경우 별도의 인센티브를 지급해 의료기관 간 경쟁이 아닌 상생 관계 구축을 기대하고 있다. 관련 수가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마련할 예정이다.
■협력병원 인센티브, 상급병원-중소병원 종속 관계로 변질 '우려'
의료계 내부에서는 상생이 아닌 종속 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의료단체 임원은 "중소병원이 감염병 등급 완화에 대비해 새로운 판로를 고심하고 있다. 협력병원 인센티브를 높일수록 중소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 종속 기관이 될 수 있다. 지역의 강호에서 내려와 대형병원 눈치를 보며 협력병원 관계유지에 치중하는 행태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영남지역 D 상급종합병원 경영진은 "의료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병원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경증환자와 중증환자 의뢰 시 치료 개선이 담보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정하고 있다. 임의로 협력병원을 선정하면 질환이 악화되어 재입원하거나 재수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엄격한 내부 절차를 전했다.
의료현장에 기반한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 모형 개선이 없다면 상급종합병원과 중소 의료기관 모두 인센티브라는 그림의 떡을 쫓는 허울뿐인 정책에 그칠 수 있다는 게 의료계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