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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규제과학 선도 국가 도약을 위한 과제

이상수
발행날짜: 2022-05-20 06:14:26

이상수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장(메드트로닉 대표이사)

COVID-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헬스케어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인류에게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을 안겼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헬스케어 서비스와 의료제품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팬데믹 발생 직후 마스크 구매를 위해 약국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던 시민들과 인공호흡기 및 개인용 보호구 등의 부족사태에 직면한 의료현장의 모습에서 의료기기산업과 원활한 의료기기 생산과 수급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팬데믹은 헬스케어에 대한 시각을 많이 변화시켰다. 과거에 헬스케어를 주로 비용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면 팬데믹 이후에는 투자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럼에도 인구 노령화와 더불어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삶을 연장시키는 신의료기술 등장으로 인해 경제 성장률보다 높은 헬스케어 지출 증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보다 면밀한 안전성 및 유효성(효과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외 헬스케어 환경 변화
팬데믹 하에서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은 새로운 성장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낸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했다. 객관적인 지표상으로 볼 때 일부 품목의 경우(가령, 치과용 임플란트, 초음파 영상진단 장비, 레이저 피부질환 장비, 진단기기) 국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입증됐다.

다품종 소량을 다루며 소수의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 주도의 의료기기산업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는 가야할 길이 멀지만, 팬데믹으로 촉발된 디지털헬스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글로벌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다. 디지털, 데이터 및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헬스 기술은 의료공급자가 더 많은 환자에게 다가가고, 소비자로서의 환자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헬스케어 서비스를 보다 예측 가능하고 환자 중심적 케어로의 전환을 촉진시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환자와 의료공급자 관점에서 의료 소비자주의가 부각되고 환자들은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의료기술은 잠재적으로 더 빠르고 안전하며 환자가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최소 침습적 치료 접근방식이 보다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헬스 기술이 동반된 재택 케어가 증가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의료 결과를 높이고 비용을 낮추는 가치 기반 헬스케어를 표방한 묶음식 지불보상, 성과기반 지불보상제도, 위험 분담, 책임케어조직 등으로 헬스케어 분야는 지속적인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의 부상과 인재 육성
팬데믹 위기에 직면한 인류는 지혜를 모아 과거에는 예상할 수 없는 유연하고도 신속한 방식으로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백신과 치료제, 그리고 의료기기를 연구개발, 제조 및 공급했다. 의료기기산업은 규제산업이다.

제품의 연구개발 단계부터 임상연구, 판매승인, 의료기술평가, 보험급여에 이르기까지 규제과학(일반적으로 규제과학은 미국 FDA에서 정의하듯이 제품의 안전성, 유효성, 질 및 성능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 기준 및 접근방식을 개발하는 과학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의료기술평가 및 보험급여를 포함해 더욱 포괄적인 시각으로 규제과학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테두리 안에서 제품의 안전성 및 효과성, 비용효과성 입증을 위한 판단 기준과 이를 입증하기 위한 근거가 요구된다.

2000년 이후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한 규제과학 분야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며, 과학 기반의 의사결정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중요성이 증대됐다.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기기의 연구개발 및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규제에 민감한 의료기기산업에서 규제과학을 다루는 인재의 교육 훈련, 채용 및 지속적인 육성에 대한 요구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헬스케어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규제과학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규제과학의 중요성에 비해 대학 교육 단계부터 인재 육성 노력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의료기기산업은 다학제의 이종 학문의 융합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이다.

일부 학과에 국한해 의료기기산업에 진출하는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현재 40개 이상의 대학에 개설된 의용공학 관련 학과에서 매년 1천명 이상의 졸업자가 배출돼 의료기기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헬스케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규제과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노력 중에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현재 수준에서 비교적 쉽게 실행할 수 있는 3가지 사항을 먼저 제안해 본다.

첫째, 4년의 의용공학 교육 과정에서 규제과학 분야의 커리큘럼을 강화하자. 학생들의 규제과학 분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향후 취업 및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 및 임상연구, 인허가 및 품질관리, 의료기술평가, 보험급여까지 아우르는 신제품 출시 경로의 주요 규제분야를 교육・훈련시켜야 한다.

둘째, 대학과 기업 간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인턴십을 수용하는 기업에게 인턴십 운영 비용 지원 및 인증을 해 주어, 현재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규제과학 인재 채용 부담을 해결해야 한다. 중소기업 주도의 의료기기산업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규제과학 인재 채용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현재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의료기기산업 특성화대학원 및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규제과학 인재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지원되고 있는 규제과학대학원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강화해 인재 교육・훈련을 위한 정식 교원 채용을 늘려야 한다.

현재 규모의 재정지원으로는 충분한 교원 충원이 어려워 체계적인 교육 훈련이 미흡하고 정부 관계자 및 산업계 인력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이다. 보다 양질의 인재 육성을 통해 우리나라가 표방하고 있는 규제과학 선도국가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의료기기산업 발전의 토대를 강화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