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인턴 OOO 출근안했대!"
"어, 뭐 그만두는 거래?"
"뭐라고 하면서 그만 뒀대?"
"에이 그것도 못버티고 뭘한다고"
5월이 지나면서 3월에 시작한 인턴들은 2개월 동안 학창시절엔 경험해보지 못한 콜과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라떼'가 섞인 말들을 들으며 회한(悔恨)에 사로잡힌다.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과연 이 길이 나한테 맞는건가?', '그만하고 나가면 바로 돈 많이 받으면서 갈 곳도 많은데?', '여기서 그만두면 낙오자 취급 받는 거 아닐까?', 'OOO이 너무 뭐라고 해서 나가는거야, 내 잘못이 아니야' 등 수많은 생각들이 하루에도 여러번 지나간다. 예나 지금이나 인턴 수련과정은 각 과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과가 운영 되는지를 보면서 내 적성을 파악하는 기회다. 다만 그에 상응하여 부모님이 지어주는 이름보다 '인턴쌤'이라는 칭호로 더 많이 불리며 과 내의 온갖 잡일을 하는 것은 그에 수반하는 의무이기도하다.
내가 첫번째 돌았던 인턴 텀에서 교수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올 한해는 아마 모두가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것이다. 인턴쌤이라는 칭호로 부르며 갖은 모욕이나 잡일 처리기로 사용하겠지만 그럼에도 너는 너 스스로의 이름을 떳떳히 밝혀라."
가족 중엔 의료계통에 종사하는 분이 없어 이렇게 의사선배에게 이성적이며 따뜻한 조언을 받은 것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나는 유난히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이후엔 항상 당당하게 이름 석 자를 밝히며 콜을 받고 자존감을 꿋꿋하게 지켜내고자 노력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의료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 조언이 내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도 인턴으로 병원에 온 선생님들을 보면 나는 그 분들의 이름을 꼭 부르고 일을 부탁하는 인턴으로 보기보다 한 사람의 피교육인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공의의 교육은 교수 또는 레지던트인 상급 교육자에게 의학지식과 의료인으로서의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련병원에서의 수련은 도제식 방식으로 대에서 대로 이어지는 방식을 지키며 당직을 지키며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전공의들은 수련이라는 목적으로 병원에서 오랜기간 머물러 자신들의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교육을 제대로 받기를 기대하기는 더 힘들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의료시스템 상 저수가를 고수하고 있는 체계에서 대형병원은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전문의 이상의 의사들에게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환자를 보도록 채찍질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배의사가 젊은 의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인턴을 포함한 전공의들은 이 상황에서 환자에게 술기를 시행하고 잡일을 처리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다. 게다가 당직이 있는 날이면 36시간 가량의 시간을 수많은 콜과 남겨진 잡일에 치여 제대로 수면시간 조차도 보장받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들은 피교육권과 휴식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조차 힘들고 버겁다.
2018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방사선 피폭과 피폭을 줄일 수 있는 납복(Lead apron) 등의 보호장비를 어떻게 착용하고 있는지 조사하였다. 당시 설문조사 질문에는 본인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주관식 문항이 있었는데 인턴선생님들의 답변들은 다음과 같았다.
'C arm, CT keep도 일상으로 하는 인턴입니다.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요인이라 하더라도, 저희가 1년만 근무하는 인턴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심각한 거 같습니다. 인턴인 저희는 방사능에 너무나 대책 없이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휴대용 인공호흡기(portable ventilator)가 있다 하더라도 앰부 배깅( ambu bagging)을 직접 하라며 CT실에 머무르도록(CT keep) 하는 일도 있습니다. 방사능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측정도 안 되고 관리도 잘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이 노출되는 건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임기 여성을 아무런 질문, 동의도 없이 방사선에 노출 시키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며 인권침해입니다.'
'갑상선 보호구, 납 앞치마 등 보호장비의 질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예전부터 쓰던 거 그대로 쓰고 있고, 다들 앞치마 관리법도 잘 몰라서 마구 접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용들을 읽다보면 일제시대 '군함도'를 상기시킬 정도의 열악함이 느껴질 정도다. 전공의 선생님들의 건강권은 기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인간의 권리인데도 그들이 평가받는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묵살당하거나 묵살을 암묵적으로 유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과연 그것이 현재에는 개선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인턴 선생님들을 비롯한 전공의 선생님들의 건강권과 교육권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사항임에도 자꾸 잊히기 일쑤다. 깨어있는 선배 의사들이 자신들의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기위해, 현재 후배의사들도 그 고통을 인내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고민하며 전공의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혜택을 입고 있는 전공의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전공의 특별법을 보는 병원과 선배의사 몇몇의 시선은 차갑다. 수련기간 동안 제대로 교육을 받을 시간이 부족하다며 수련 시간에 대해 더 늘려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진료보조인력(PA)를 합법화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냉정하게 따져볼 때 문제는 저수가로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하는 한국의 보건의료 시스템과 전공의 교육보다는 본인의 실적에만 관심을 두고 이미 손 발이 착착 맞았던 PA만을 수술방과 회진에 참여시키는 몇몇은 선배의사들이 그 원인은 아닐까?
도제식으로 자신들이 전달받았던 의술과 임상의로서의 역량을 자신의 대에서 소멸시키고 있는 선배의사들. 저렴한 수가로 더 많은 환자를 케어할 수 있도록 구미에 맞는 의료진을 배출하고자 공공의대를 추진하고, 직역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서투른 입법으로 자신들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위정자들. 그 사이에서 전공의들은 건강권과 교육권을 수호받지 못하고 건강은 건강대로 악화되고 미흡한 교육은 미흡한대로 받으면서 그렇게 배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