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제도화 물살을 타고 있는 비대면진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대면진료는 의료계 일상으로 파고 들어왔고, 일선 개원의는 제도화 되더라도 참여하겠다는 '긍정적'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메디칼타임즈는 지난 20~22일 의사 대상 비대면진료를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는 온라인으로 진행, 총 161명의 의사가 응답했으며 이중 개원의가 72%였다.
정부는 2019년 2월 '한시적'이라는 조건을 달고 의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환자와 의사 사이 비대면진료를 허용했다. 올해 1월 기준 352만건의 진료가 이뤄졌고 1만3252곳의 의료기관이 비대면진료비를 청구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20만명을 넘어서며 폭증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정부는 재택진료 수가까지 따로 만들어 동네의원이 코로나19 환자 전화상담 및 처방을 독려하기도 해 그 건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설문조사 응답자의 68.1%가 코로나 재택진료를 포함해 전화상담 및 처방, 즉 비대면진료를 실제 경험해 봤다. 나아가 비대면진료가 제도화 된다면 59.4%가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거동불편 환자 접근성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고 다양한 진료 활로 개척, 단골 환자 관리, 의료기관 수익창출에 도움 등을 꼽았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31.9%는 비대면진료를 해보지도 않았고 40.6%는 비대면진료 제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료사고 등 책임소재가 불안하고 대면진료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개인적인 소신이 크게 작용했다.
의사들이 생각하는 비대면진료 방향성은?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서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에 의료계는 그 방향성에 대해 본격 고민할 시기다. 대한의사협회가 비대면진료에 대한 입장을 완전 반대에서 미온적 반대로 전환한 것도, 서울시의사회 차원에서 원격의료연구회를 선제적으로 만든 것도 이 같은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의사들은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위해서는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와 대상기관 명확화 ▲의료전달체계 확립 ▲비대면진료 플랫폼 규제책 마련 ▲표준진료 가이드라인 완성이 꼭 함께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봤다.
메디칼타임즈는 보다 세부적인 방향성에 대해 물었다. 현재 정부는 '전화'라는 수단을 통한 비대면진료를 인정하고 있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5.5%는 전화로 하든, 화상을 하든, 전화와 화상을 병행하든 비대면진료 방식을 의사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대로 모든 방식을 환자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설문조사 대상을 개원의 중심으로 진행한 영향일까. 비대면진료 허용 의료기관 범위를 묻는 질문에 72.3%가 '1차 의료기관'까지만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16%가 의료기관 종별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답한 점이다.
비대면진료에 적합한 환자군을 묻는 질문에서는 67.3%가 동일 질환에 대한 재진 환자만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질환과 상관없이 의사가 한 번 이상 대면진료를 한 환자에게 비대면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답변도 22.9%였다. 궁극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비대면진료는 '재진'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 셈이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하고 있는 비대면진료 허용 법안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재진 환자에서만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78.9%는 고혈압 및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자에 비대면진료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감기 등 경증질환 진료도 50.3%가 답했고, 20%는 각종 질병 치료 수술 후 관리에도 비대면진료를 적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수가는 어느정도가 적정할까. 현재 정부는 전화상담 및 처방에 진찰료에 30% 가산을 더해 주고 있다. 적정 수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의견이 갈렸다.
절반이 넘는 51.3%가 진찰료 가산이 필요하다고 봤다. 보다 구체적으로 32.7%는 진찰료의 1.5배 이상은 줘야 한다고 했고, 18.6%는 현재처럼 30% 가산에 답했다. 25%는 비대면진료 수가를 대면진찰료과 똑같이 지급해도 된다는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10명 중 한 명꼴인 10.9%는 100% 환자본인부담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비급여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5% 있었다.
비대면진료를 제도화했을때 하루에 환자 몇 명까지 가능토록 할지, 지역을 제한해야 할지에 대한 부분도 의사들에게는 중요한 화두였다. 67.3%는 비대면진료 비율 및 건수를 제한해야 한다고 했고 62.8%가 비대면진료 가능 지역 제한도 필요하다고 봤다.
하루 비대면진료 건수를 제한한다면 얼마가 적정할까. 전체 환자의 10% 미만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38.8%)과 30% 미만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34.7%)이 비등비등했다. 전체 환자 대비 비율보다는 의사 1인당 건수를 제한하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비대면진료가 가능해진다면 거리적 한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 물리적 장벽이 사라지는 것을 다수의 의사는 경계하고 있었으며 그런 만큼 비대면진료 가능 지역을 제한하자는 목소리도 '필요없다'는 의견보다 컸다.
절반이 넘는 51.4%는 비대면진료 가능 범위를 지역사회에서 가장 작은 단위인 '시군구'로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27.5%는 지역 제한 자체가 필요 없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주치의에게만 비대면진료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는 소수의견까지 등장했다. 차로 30분 이내, 산간 도서지역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시의사회 관계자는 "비대면진료는 물리적 제한이 완전히 사라지는 만큼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라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지 않고도 서울에 있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셈이 되니 처방시장에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처방범위 제한이 중요 쟁점"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비대면진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비대면진료가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공식화되면서 가장 큰 변화가 환자와 의료기관을 중개해주는 '플랫폼'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쌓인만큼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체도 20개에 달한다.
의사들도 69.7%가 비대면진료 제도화 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필요 없다고 한 응답자도 24.4%를 차지했다.
이미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체가 난립하고 있는 현재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의료기관과 결탁한 의료상업화 시도 (49.4%)를 꼽고 있었다. 원하는 약 배송 등을 통한 의약품 오남용 우려, 환자 정보 유출 등 보안 문제, 본인부담금 면제 등 비도덕 행태 유도 등의 의견이 뒤를 이었다.
비대면진료를 위한 플랫폼이 필요한 상황에서 플랫폼 운영 주체에 대해서 물었다. 70%가 넘는 의사들이 시장 자율성에 맡기기보다는 표준화, 규격화된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보였다.
절반이 넘는 58.4%가 의사협회 등 협회나 의료단체 주도의 표준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플랫폼을 의사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시장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바로 뒤를 이었다. 의사 단체가 아닌 보건복지부 등 정부 주도의 단일화 시스템이 좋겠다는 의견도 15.6%였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어떤 플랫폼 기능을 바라고 있을까. 응답자 10명 중 7명에 달하는 77.8%가 안정적인 구동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58.8%가 플랫폼과 EMR 연동 여부를 중요하다고 봤다.
현재 플랫폼 업체 중 EMR과 연동되는 곳은 없는 상황이다. 실제 EMR과 연동된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등장한다면 60%의 의사가 쓸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화상 기능 탑재 여부, 프로그램 업데이트, 결제 기능, 각종 정보 전달용 문자 기능 등을 중요하다고 꼽았다.
서울시의사회 박명하 회장(대한의사협회 원격진료TF 위원장)은 "지금은 어떤 제재도 없이 지나치게 산업적이고 영리적이며 수익 사업으로 접근해서 진행되다 보니 문제점이 도드라지게 보이고 있다"라고 진단하며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비대면진료가 등장한 만큼 제도화를 하더라도 일시 멈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