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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사원 죽이기 아니라 떳떳하고 싶을 뿐"

발행날짜: 2010-05-11 06:50:58

르뽀제약사 영업사원 출입금지령 현장을 가다

김해시 내과의원 상당수가 의사회가 전달한 공문을 입구에 부착했다.
10일 오후 1시30분 구로구 A의원. 김모 원장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지인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간혹 찾아와 점심을 함께 했던 제약사 영업사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원장은 몇일 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영업사원이 왔지만 앞으로는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돌려보냈다고 했다.

김해시 B내과의원 입구. '영업사원 출입금지'라고 적힌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 최근까지도 얼굴을 비췄던 영업사원은 병원 입구에 포스터를 부착한 이후 더이상 찾아오지 않고 있다.

최근 김해시의사회에 이어 구로구의사회가 리베이트 쌍벌제와 관련, 진료실 내 영업사원 출입금지를 선언한 이후 실제로 일선 개원가에서는 제약사 영업활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김해시의사회가 제약사 영업소 300곳에 영업사원 출입금지 공문을 전달한 지 12일, 구로구의사회가 긴급이사회를 통해 결의를 다진 지 7일만이다.

10일 만난 구로구 C정형외과 개원의는 리베이트 쌍벌제 국회 통과 직후에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는 감정적으로 대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의사회의 결정에 따르고 있었다.

그는 "영업사원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제약사를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이를 계기로 판촉에만 치중하는 제약사는 퇴출되고 신약을 개발, 연구하는 제약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로구의사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영업사원 출입금지에 동참하고 있다.
구로구 D의원 또한 영업사원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또 앞서 원무과에서 처방내역표에 도장을 찍어줬지만 얼마 전부터는 이 또한 중단했다.

D의원 개원의는 "처방내역표를 발급해주거나 도장을 찍어주면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며 "최근에는 원무과에 처방내역표를 발급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쌍벌제 처벌이 가혹해서 그렇지 솔직히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며 "이번 기회에 제약사들이 판촉활동 대신 신약을 개발, 약가를 떨어뜨려 결국 건보재정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해시 E내과의원 개원의는 "몇푼 안되는 돈 받으면서 괜한 의심을 받는 게 싫어서 영업사원 방문을 받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친분이 있었던 제약사 직원을 만날 수 있겠지만 판촉과 관련한 만남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김해시개원내과의사회 이재홍 회장은 "일선 회원들은 이번 의사회의 결정에 따르는 가장 큰 이유는 그저 떳떳하게 살고 싶어서이다"며 "김해시의사회에서 영업사원 출입금지와 관련해 별도로 독촉한 적도 없었지만 회원들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껴 의사회의 결정에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일선 개원의들이 모두 의사회의 결정에 적극 찬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개원의 대부분이 영업사원 출입금지에 동참하고 있었다.

구로구 I내과 개원의는 "정부도 마음에 들지 않고 사전에 이를 막지 못한 의사협회에도 불만이 많지만 일단 의사회의 결정에 따르고 있다"고 했고, 인근에 위치한 K의원 개원의는 "이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번쯤 전체 회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그러나 일단 집행부가 결정했고 현재로써는 최선이라고 생각해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로구의사회원 상당수가 접수창구에서부터 영업사원 출입을 막고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상황이 이쯤되자 해당 지역 영업사원들은 초긴장 상태다.

모 제약사 김해시 영업팀장은 "진료실 방문 제한 뿐만 아니라 처방내역표도 뽑아주질 않고 있다"며 "사업장 분위기가 말도 아니다"라고 울상을 지었다.

모 제약사 구로구 영업사원은 "유대가 잘돼있는 곳은 만나고 있지만 일부는 만나지 않겠다고 해서 걱정"이라며 "기존거래처는 유지가 되겠지만 신규거래를 트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김해시 모 내과의원 개원의는 "얼마 전 학회에서 만난 제약사원은 요즘 같은 분위기가 길어지면 머지않아 구조조정이 이뤄질 거라며 직원들 간에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더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해시의사회 최장락 회장은 "김해시 내과의원은 90%이상이 영업사원 출입금지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김해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진주, 창원, 양산시, 마산시 등에서도 확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구로구의사회 김교웅 회장은 "이번 일이 영업사원 죽이기로 호도되선 안된다"며 "우리의 목표는 제약사 영업사원 출입금지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투명화와 발전이며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제약사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