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보의연 2주년 평가와 향후 계획
"지난 2년간 근거중심 의료의 기초를 닦았다면 이제는 거시적 시각에서 의료의 질에 대한 보장성을 논할 단계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 허대석·이하 보의연)이 개원 2주년을 맞았다.
보의연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 첫 번째 사건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 사회단체 등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란 평가다.
허대석 원장은 27일 "보라매병원 사건에서부터 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무의미한 연명치료 문제가 수 십년간 우리 사회의 화두였지만 의료계 입장에서 접근하다보니 제도를 개선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환기시켰다.
허 원장은 "연명치료는 법적, 윤리적, 사회 문화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근거를 창출해 주는 공공기관이 없었다"면서 "그런 점에서 보건의료연구원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보의연은 지난 2년간 의료계에 뜨거운 감자로 자리매김했다.
글루코사민제제가 골관절염 예방, 치료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노화 방지와 미용 목적으로 사용해 온 태반주사 역시 관련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식약청이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태반주사제 중 녹십자 제품을 제외한 모든 제품의 허가를 취소한 것도 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국소적 결막절제술(미백수술)의 안전성 문제를 들어 시술 중단 결정을 내린 것도 보의연의 연구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허대석 원장은 "지난 2년간 보의연의 연구결과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도 일부 있었지만 우리나라 근거중심 보건의료제도의 첫 발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보의연은 올해에도 로봇수술, 근시교정술(라식 수술 등)의 안전성, 유효성 평가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난청환자의 보청기 사용에 대한 문제점 등에 대한 조사결과도 내놓을 예정이다.
허 원장은 "의료기관들이 경쟁적으로 고가 의료장비를 도입하다보니 국민 입장에서는 고비용 의료를 받을 수밖에 없고 로봇수술이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누군가 근거를 분석해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보의연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의료행위를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건국대병원 송명근 교수의 카바수술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 평가연구다.
보의연이 지난해 카바수술에 대한 후향적 연구결과 보고서를 복지부에 제출하자 국정감사에서 연구의 공정성 시비로 비화됐다.
이와 관련 허 원장은 "의료의 근거는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게 옳다"면서 "행정적, 정치적으로 근거자료를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우회적으로 어려움을 피력했다.
보의연은 앞으로 거시적인 시각에서 의료의 질에 대한 보장성 강화,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 제시 등에 주력할 방침이다.
허 원장은 최근 논란이 된 경북대병원의 장중첩증 소아환자의 사망 사건을 예로 제시하며 의료의 질적 보장성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장중첩증 소아환자가 사망한 것은 진단장비나 의료기술이 부족하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필수의료에 소홀했던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비용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해 왔다면 이제 국민들이 필수적인 진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시점"이라고 환기시켰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전체 의료시장이 70조원에 달하는데 선진국과 달리 약과 검사 비중이 너무 높은 반면 상대적으로 환자 케어 비용, 의사 기술료 비중이 낮다"면서 "의료가 본연의 모습으로 가고 있는지,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