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지금 사회적 분위기로 볼 때 무상의료 정책은 내년 총선·대선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무상의료·무상교육은 민주노동당이 국민들로부터 일정한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는 주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진보진영의 의제를 민주당이 받아안음으로써 사회적 의제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라 자임하는 쪽에서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무상의료를 비현실적이라 비판하며 의제의 확장을 막으려 하지만 크게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
한국, 미국, 멕시코 등 몇 개의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OECD국가들은 국가가 무상의료에 준하는 수준의 의료서비스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화로 국제교류가 확산됨에 따라 다른 선진국의 경험은 우리 국민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무상의료 의제화, 정확히 말하면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보수진영도 반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를 포함한 진보적 시민사회 진영의 요구는 분명하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1인당 연간 100만원이상 의료비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 입원 병원비 보장률은 90%로 하자는 것, 간병, 틀니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재원도 단순히 국가가 모두 내라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더 내겠으니, 사회연대적 원리에 따라 국가도 기업도 더 내라는 요구는 무상의료 반대 진영의 입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단지 무상의료에 30조 이상이 들어갈 것이고, 그리되면 보험료가 2배 이상 인상되어야 한다는 보수 진영의 반대논리가 설득력을 갖긴 어렵다.
과학적 근거도 없을 뿐더러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어려워 금방 탄로 난다. 무상의료에 30조 이상 들어간다는 데, 그 수혜 대상자인 의료계가 적극 반대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납득할 리가 있는가.
의료계는 무상의료 의제화를 반대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고민해야 한다. 의료계, 국민, 정부가 모두 win-win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순히 의료개혁에 저항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받아안음으로써 의료개혁의 일주체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과 의료계의 화합지점이 어디인지를 찾아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의료체계와 의료비 부담 구조는 최악이다.
의료체계가 국민들의 의료 필요에 기반해 조직화되기 보다는 의료공급주체의 시장성에 따라 무정부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도시-농촌지역간의 서비스공급의 불균형,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로 의료이용의 불형평이 지속되고 있다.
또 필수의료서비스 영역인 응급서비스, 재활서비스가 매우 취약하다.
의료비 부담은 어떤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이 취약하니 중병이라도 걸리게 되면 가정이 흔들리기 십상이다. 2008년 기준으로 국민들이 직접 의료기관에 부담한 진료비는 15.5조 정도나 된다.
2004년에는 10조였다. 이 격차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향후 점차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갈수록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료비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의료보험에 과다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 한국의료패널자료에 의하면 가구당 평균 3.6개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고, 가구당 평균 월 13만원에 이르는 민간의료보험료를 부담하고 있었다.
전국민으로 환산하면 무려 27조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무려 건강보험료의 2배에 이른다. 그런데 민간의료보험의 보장률은 40~50%로 매우 취약하다. 더욱이 의료비 부담이 큰 고령층이나 만성질환자들은 가입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아 민영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을 보완하기는 커녕 오히려 가계에 이중의 부담을 안기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는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런 인식들은 앞으로 점차 확장되어 갈 것이다.
의료계 상황은 또 어떤가. 우리의 의료공급체계의 특징은 시장에 방임된 무정부성이다. 그러다보니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어 1차-2차-3차간의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또, 1차 의료기관끼리, 2차 의료기관끼리, 3차 의료기관끼리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무정부적인 무한 경쟁은 결국 자본을 갖춘 몇몇 대형병원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 틀림없다. 지금은 대형병원 중심으로 환자쏠림이 가속화되고 있어, 1차 의료기관들, 중소병원들, 지방의 3차병원들이 모두 고사되고 있다.
건강보험의 취약한 재정은 보험수가 영역에서 저수가체계를 강제하고 있고, 의료기관들은 이를 보상받기 위해 비급여를 개발하고, 고수가를 책정함으로써 대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급여를 개발할 수 있는 대형병원들, 전문병원들, 비급여 중심의 진료과들의 경우, 성장동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의료기관들이나 진료과들은 위축되고 있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구조이다. 의료계의 양극화는 국민건강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이런 의료체계의 문제를 지금까지 어떤 정부도 제대로 해결해 내지 못하였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든, 보수정부든 제대로된 해결책을 제시한 적이 없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된 의료 사유화 정책들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무정부성을 더욱 강화시키고 고착화시키고 있다. 영리병원의 허용,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등이 그것이다.
이들 정책의 수혜자는 영리화를 추구하는 대형병원, 전문병원 등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료계 역시 피부로 느끼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은 어떤가. 많은 의료인들은 국민건강보험 대신에 민간의료보험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국민들의 민간의료보험의 지출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의료기관의 수익과는 전혀 무관하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는 국민들에게는 의료비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며, 그 혜택은 의료기관이 아니라 민간보험이 고스란히 보고 있다. 의료의 시장화가 가속화될 경우, 국민의료비 부담은 증가하지만, 그 수혜가 국민과 의료계에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GDP 대비 국민의료비를 16%넘게 쓰고 있는 미국의 경우, 가장 큰 수혜는 다름아닌 민간보험회사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국민과 의료계가 윈윈하는 의료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나는 그 열쇠의 한축을 의료계가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의료계의 입장에서는 국민에게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고, 선의의 환자 대리인임을 자처하며 존경받고 싶어한다.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요구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요구가 국민들의 요구와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바로 건강보험에서 그 접점을 찾을 수 있다.
현재 국민들은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의 재정을 확충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재정을 확충하는 것이 의료계에 입장에서 결코 나쁠 리 없다. 저부담-저수가제도를 적정부담-적정수가로 바꾸는 것은 국민과 의료계에 모두 이익이다. 국민에겐 보장성이 높아져 좋고, 의료계는 적정보상이 가능해져 좋다.
다른 한편, 첨예하게 갈등이 되는 부분이 있다. 국민, 기업, 정부 등 재원 부담 주체들은 재정이 낭비되지 않고 제대로 쓰일 것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측면에 대한 보완책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의료계는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타협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건강보험의 재원이 국민에게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구멍난 독을 메꿔야 하고, 그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이제는 의료계가 국민들이 원하는 의료개혁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요구와 의료계의 요구가 같은 방향으로 수렴될 수 있어야 한다.
의료계와 국민들이 안고 있는 고충을 진실로 소통하며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리되면 의료계가 국민들의 불신을 극복하고 존경받는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의료계가 무상의료 의제를 회피하거나,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