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의 전문과목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일까.
25일 개원가에 따르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배운 전문과목을 살리지 않고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개원시장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문과를 표방하는 것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개원의들의 분석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미용 성형 등 비급여 진료과목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지만, 최근 들어서는 급여진료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실제로 내과,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통증클리닉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형외과, 신경과 전문의들의 진료영역이라고 여겨졌지만 최근 통증클리닉이 주목을 받으면서 타과 전문의들이 대거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요양병원도 마찬가지다. 산부인과, 재활의학과 등 전문과목과 무관하게 관련 학회에서 강의를 듣고 노인의학 인정의를 취득해 요양병원을 개원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대한노인의학회 관계자는 "산부인과 전문의들도 노인질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저출산으로 산모가 감소하는 산부인과를 유지하는 것보다 요양병원이 전망이 밝다고 판단해 요양병원 진출을 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앞서 전문과목을 포기한 개원의들의 성공사례는 후배 의사들에게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 A원장은 산과 진료를 접은 지 오래다. 대신 그는 지방흡입술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A원장은 전문과목을 표방하지 않고 OO의원으로 개원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그를 찾는 환자가 줄을 서고 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B원장은 코성형 분야에서는 꽤 알려진 의사. 그에게 코 성형술을 배워가기 위해 성형외과 전문의까지 찾아올 정도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모 원장은 "환자들은 해당 의사의 전문과목보다 해당 진료에 대해 얼마나 전문성을 갖췄는지, 수술 사례는 얼마나 되는지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게 사실"이라면서 "의료소비자의 욕구에 따라 의사도 변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개원의들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모순 때문에 의사들이 전문과목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며 "산부인과 전문의의 분만수가가 턱없이 낮은데 누가 분만을 하려고 나서겠느냐"고 꼬집었다.
전문과목만 고수해서는 병원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개원의들이 진료분야를 바꾸는 사례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이 같은 변화는 결국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면서 "우리나라의 장점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인데 이런 변화는 이런 장점을 희석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즉, 4년간 레지던트 수련을 통해 배운 것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역시 인력 낭비라는 지적이다.
그는 "실제로 비전문의가 잘못 수술했다가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면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것은 최근 개원가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환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