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료기관들이 애매한 정신요법료 심사기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신의료기관협회(회장 이병관)는 최근 '정신요법의 적정성 어디까지인가?'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인천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은 주제발표에서 "정신과 치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상담료 수가의 저평가가 제반 다른 치료행위의 저평가를 유도하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현재 정신요법료 규정을 보면 지지요법의 경우 정신장애 해소 내지 경감 목적으로 15분 이내에서 시행하면 1만 220원의 수가를 인정한다.
집중요법은 15~45분 이내에서 지지적 기법 등 면담 기법을 혼용하면 1만 9280원의 수가를 받을 수 있다.
심층요법은 무의식 내용, 증상 완화, 성격 구조 및 자아 방어 양상의 수정을 위해 의사가 45분 이상 할애해야 3만 20원의 수가가 인정된다.
또한 외래는 이들 요법을 합해 주 2회 이내에서만 수가를 산정할 수 있고, 입원은 주 6회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입원환자에 대한 심층요법은 주 2회 이내만 인정된다.
천 원장은 "정신의료기관은 정신요법료 이외의 수익 모델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저평가된 수가체계에도 불구하고 치료횟수마저 제한받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이 때문에 수익 극대화를 위해 천편일률적인 수가 청구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환자의 특성과 관계 없이 지지요법 몇 회, 집중요법 몇 회, 심층요법 몇 회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삭감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는 실제로 환자를 위해 열심히 한만큼 얻어갈 수 없는 수가구조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에 관계 없이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묶어 놓은 정신과 의료급여 일당정액수가제 역시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게 정신병원계의 오래된 지적이다.
그는 가족치료의 현실도 도마에 올렸다.
가족치료 수가는 개인 1만 2230원, 집단 6330원이지만 주 1회만 수가로 산정할 수 있다.
그는 "환자 가족들이 일주일에 한번만 찾아오는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이들이 수시로 전화하는데 이는 왜 수가로 인정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작업 및 오락요법도 심각하다. 이 요법은 외래에서 주1회, 입원 주5회 인정되지만 수가는 고작 3570원에 불과하다.
그는 "이 요법은 탈원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치료수단이지만 환자들과 놀아주는 것으로 인식하는 게 문제"라면서 "일주일에 다섯번 청구한다고 해서 다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그는 정신요법료 심사기준의 모호성을 문제 삼았다.
의무기록은 환자의 상태, 제반 검사 결과 등을 기록, 궁극적으로 환자 회복을 돕는 도구다.
논란의 핵심은 실제 해당 치료가 이뤄졌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합의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신요법료가 삭감되지 않으려면 지지요법 3줄, 집중요법 6줄, 심층요법 9줄 이상 의무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퍼지고 있다.
천 원장은 "이런 이유로 인해 병원 입장에서는 괜히 높은 수가를 산정했다가 부당, 과잉청구로 삭감 되느니 차라리 속 편하게 청구하자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선 진료과장 입장에서는 차팅하는 수고로움, 장시간 면담을 기피하고, 환자 1명에게 50분 심층요법을 하느니 5명에게 지지요법 10분 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병관 회장 "심평원 지원 따라, 심사자 따라 잣대 다르다"
천영훈 원장은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면서 "심사 잣대가 비현실적이면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고 열심히 진료해도 수가를 보장받을 수 없다"면서 "정부와 심평원은 실제 진료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병관 회장도 "서울이든 지방이든 동일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하는데 심평원 지원에 따라, 심사자에 따라 잣대가 달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섰다.
이 회장은 허위청구 적발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정신의료기관들이 비급여인 비만, 금연요법을 한 뒤 급여로 진료비를 청구해 허위청구로 몰리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불안장애, 우울증을 동반하는데 이런 급여 대상도 청구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심평원 김연숙 조사기획부 차장은 "의무기록을 충실히 하면 모두 인정하는데 실제 행하지 않고 청구하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