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의 실수로 가슴 속에 솜을 넣고 2년 동안 살던 이 모씨. 외과 수술로 솜을 제거한 후 의사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의사에게 돌아온 변명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그게 왜 거기에 있지? 그런데 가슴에는 솜이 좀 들어 있어도 상관없어요."
의료인의 무책임한 답변에 이 씨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 돈이 없어서 항암제를 먹지 못하는 말기암환자, 2시간 대기 3분 진료를 받은 직장인…환자들의 답답한 마음은 어디에서 얘기해야 할까?
한국환자단체연합은 최근 환자들의 억울함, 불만, 상처 등을 마음껏 쏟아내기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환자 샤우팅 카페'가 그것이다.
병원, 약국, 제약사, 보험사, 정부 등으로부터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권익을 침해당한 환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제1회 환자 샤우팅 카페는 지난 27일 서울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렸다. 억울함을 품고 있는 환자들과 보호자 등 약 100여명이 참석했다.
우선 2년 전 경북대병원에서 항암제가 바뀌어 사망한 10살 백혈병 어린이의 어머니 김 모씨가 나와서 담담히 풀어놓는 이야기는 행사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일명 '빈크리스틴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 김 씨는 "의료사고에 대응하는 메뉴얼을 재정비하거나 환자안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탤런트 고 박주아씨의 유족이 참석해 불필요한 로봇수술, 중환자실에서의 수퍼박테리아 감염 등에 대해 토로했다.
백혈병다발성골수종 환우 김 모 씨는 골수 이식을 포기한 사연을 토로했다.
그는 "두번의 자가 골수이식을 받은 후 골수일치자를 찾아 세번째로 골수이식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보험 적용이 안돼 이식을 포기했다"고 외쳤다.
이밖에도 ▲표적치료제 아바스틴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매달 500만원이 넘는 치료비를 부담하고 있는 대장암 환자 ▲3년동안 항암제 '글리벡'을 복용해야 하는데 건강보험은 1년 밖에 안 돼 한 달 260만원의 약값을 내야 한다는 위장관기질암(GIST) 환자 등의 샤우팅이 이어졌다.
환자단체연합은 환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자문단도 초대했다. 1회 자문단은 서울의대 권용진 교수, 상명여대 간호학과 이한주 교수, 이인재 의료전문 변호사가 참석했다.
이들은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권용진 교수는 빈크린스틴 사건 사연을 들을 후 환자안전에 관한 법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상임대표는 "기대 이상으로 억울함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반증한다"며 "환자들은 권익을 침해당하고 있지만 하소연을 들어주는 곳은 거의 없다"고 현실을 말했다.
그는 이어 "샤우팅 카페 행사가 10회 정도 진행되면 내용을 모아서 책도 발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