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는 의료계의 과거의 다양한 모습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Back to the 의료계'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 의무화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의료계는 전면 반대를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제도시행을 막지는 못했다.
이번 포괄수가제 파동과 데자뷰 같은 해가 있었으니 지난 2003년이었다.
포괄수가제는 1997년부터 시범사업이 시작됐으며 2002년부터 본격적인 선택 시행에 들어갔다.
복지부는 드디어 2003년 포괄수가제를 전면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기도 올해와 같이 7월 1일로 똑같았다.
당시 의료계도 즉각 반발했다. 의협 김재정 집행부는 의약분업보다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의료계의 반대 이유도 지금과 같이 '의료의 질' 저하 였다.
전국 시군구 대표자 결의대회, 전국 반모임, DRG 관련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결의도 있었다.
의약분업 투쟁에 대한 기억을 가진 복지부는 의료계의 반발에 일단 물러났다. 시행시기를 11월로 미룬 것이다.
그러면서 개별 접촉에 들어갔다. 특히 복지부는 병협과의 만남을 통해 종합전문요양기관에 대한 포괄수가제 적용시기를 6개월간 유예시켜 주기로 해, 밀실합의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복지부도 11월 시행만은 쉽게 양보할 수 없었다.
그해 8월 23일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9월 13일에는 입법예고 기간도 끝났다.
복지부는 의료계를 설득하기 위해 시범사업 결과를 공개하고 공청회를 두 차례나 마련하는 등 마지막까지 포괄수가제 강행을 위한 안간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의료계는 전국의 의사들이 공청회에 몰려와 강경 투쟁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에는 의료계가 의약분업 투쟁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투쟁의 열기도 살아있었다. 정부 역시 제2의 의약분업 사태를 크게 우려했다.
의협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의료계의 집단행동, 다시 파업하겠다는 각오로 부딪힌 게 결국 정부를 물러서게 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국회도 의료계에 우호적인 인사가 적지 않았다. 보건복지위원회 박시균, 김찬우, 심재철 의원 등은 포괄수가제 유보를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복지부 김화중 장관은 9월 22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포괄수가제를 종전대로 희망의료기관에 한해 적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입법예고까지 마친 법안도 철회했다.
그 후 복지부는 상당한 후폭풍을 겪어야 했다. 시민단체들은 김 장관이 의료계 압력에 굴복해 포괄수가제를 포기한 반개혁적 인물이라며 퇴진을 요구했었다.
결국 포괄수가제로 복지부와 대립각을 세우던 의료계가 김 장관 지지성명을 내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