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으로 비급여의 급여화 등 필수의료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건보공단의 야심찬 연구결과가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최로 9일 열린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학계와 공급자 토론자들은 공단의 연구결과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건보공단 쇄신위원회는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와 보장성 강화방안 등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공단 측은 직장 및 지역가입자의 부과체계를 단일화하고, 가입자의 모든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비급여의 급여화(3조 9403억원), 간병서비스 급여화(3조 3906억원), 선택진료 폐지(1조 6178억원), 기준 병실 4인실로 상향조정(7778억원) 등 9조 7265억원의 필수의료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재난적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액 기준 계층별 100만원씩 인하(1조 3643억원)과 저소득층 외래와 입원 본인부담률 인하(3884억원) 등을 합치면 총 11조 4792억원이다.
공단은 이같은 방식을 5년간 시행하면 2017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8.5%로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학계는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보였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는 "간병서비스가 필수의료인가"라고 반문하고 "비급여의 급여화는 재정적 문제로 본인부담률을 90%로 책정하는 수가가 마련돼야 소비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어 "보장성 강화가 지금처럼 전문가와 정치적 논리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보통 사람의 가치와 판단에 의해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대 간호대 김진현 교수도 "보장률 80%가 11조면 가능하다고 했는데 어림도 없다"며 "근거가 부족하다. 지출구조가 동네의원에서 병원으로 바뀐 비효율적 구조에서 보장성 강화는 대형병원 집중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사연 신현웅 박사 역시 "보장성은 한번 확대하면 되돌리기 힘들다"라고 전하고 "재원 확보가 핵심으로, 잘못하면 불필요한 의료 과수요를 야기 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원확보 없은 보장성 강화, 불필요한 과수요 야기"
신 박사는 "간병서비스 급여화, 기준 병실 4인실 상향, 선택진료비 폐지 모두 쉬운 얘기가 아니다"라며 "공급자의 손익에 따른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 역시 공단 쇄신위 결과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병원협회 나춘균 보험위원장은 "재정확보 없는 보장성 강화는 의료수가의 하향화를 의미한다"면서 "한국 의료제도는 저수가 속에서 최고의 의료 인력과 장비로 환자를 조기 사회에 복귀시키고 있다"며 수가현실화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나 위원장은 이어 "식대 급여화가 대표적인 보장성 실패 정책"이라며 "복지 포퓰리즘에 빠져 정책이 결정되면 10년 후 영국과 같은 위내시경을 받기 위해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원의협의회 이혁 보험이사도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되는 보험료율로 보장률을 80% 높이겠다는 것은 트릭이 있다"면서 "공급자가 어려움을 겪은 구조적 모순의 개선 없이는 건보의 지속가능성은 붕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민노총 "비급여 공개 등 경영 투명화 수가로 이어질 것"
반면, 보장성 강화에 대한 시민단체의 시각은 달랐다.
민노총 김경자 사회공공성강화 위원장은 "보장성이 강화됐지만 보장률을 떨어지는 것은 비급여가 늘어난 풍선효과 때문"이라며 "환자 선택권도 없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임의비급여 등이 초점화 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수가가 정말로 낮은 것인지, 비급여는 확인 안 된다"며 "의료기관의 재정이 투명화 되면 수가 적정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김선회 국장은 "동네의원이 망하는 모습을 가끔 보면 안타깝다"고 언급하고 "의원도 살고, 환자도 영화와 같은 주치의를 두고 살 수 있는 방인이 없을까를 생각한다"며 개원가를 의식한 주치의 제도를 제언했다.
한편, 이날 복지부는 토론자로 참석하지 않아 공단 쇄신위원회 연구결과에 대한 신뢰감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