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노환규 회장은 왜 자정선언 카드 꺼냈나
전국시도의사회장들이 노환규 집행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노환규 회장 취임 5개월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13일 '국민 건강 위협하는 의료악법 규탄대회'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다.
직접적인 발단은 '의사 자정선언문'. 노환규 회장은 왜 의사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정선언문 발표를 추진한 것일까?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12일 "지난 8월 강남 산부인과 전문의가 사체를 유기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의사들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고 환기시켰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살인, 시신 유기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를 영구 박탈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료계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연타를 맞았다.
언론은 이언주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으로 보고했고, 의료계는 다시 한번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으로 내몰렸다.
그러자 의협은 상임이사회에서 자정선언 논의에 들어갔다.
사실 노 회장은 취임 이전부터 의사들의 자정을 누차 강조해 왔고, 지난 7월 임원 워크샵에서도 윤리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회장은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사에게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요구하려면 의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오랜 기간 동안 행정권을 남용해 온 정부에 대한 의사들의 불신과 피해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이어 그는 "이제 의사들도, 정부도 노력해야 한다"면서 "의사는 생각을 바꿔 자정을 통해 자존감을 스스로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정부는 전문가단체를 존중하고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과도한 통제를 줄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때문에 의협은 자정선언문 작성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정 발언 수위'와 '소통'이었다.
전국시도의사회 회장들은 12일 성명서를 통해 "의사의 자정강화에 대한 의협 노환규 회장의 인터뷰와 언론보도를 접한 다수 회원들은 심각한 자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봇수술 사망률이 80%에 이른다는 등 극히 예외적인 의사들의 비윤리적인 사례를 일반화해 의사집단 전체를 매도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분열된 의료계를 하나로 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지역의사회에 허탈감을 안겨 줬다"면서 "의협의 공식 입장은 다양한 직능의 의견을 수렴하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발표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노환규 회장의 일방통행식 회무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런 의료계의 불만을 의협 집행부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송 대변인은 "의협 집행부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정식적인 절차를 거치면 자정선언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보수적인 의료계 지도층의 성향상 자정선언을 공론화한다 하더라도 시간만 지체될 뿐 진전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노 회장이 언급했다시피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피해의식이 강하다는 측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송 대변인은 "의사들에 대한 불신은 불성실한 진료를 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이는 3분진료를 만든 의료제도에 기인한다"면서 "30분진료하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가를 현실화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이와 함께 송 대변인은 "수가 인상은 의사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게 아니라 결국 진료를 충실히 하자는 것"이라면서 "의사에 대한 신뢰, 이미지를 회복해야 대선 국면에서도 의료계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