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5시 서울대병원 소아임상강의실. 정부의 포괄수가제 강행에 반대하는 전국 산부인과 주임교수와 레지던트가 대거 몰려왔다.
이날 산부인과학회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산부인과에 대해 포괄수가제를 강행할 경우 7월 1일부터 복강경수술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하기 위해서다.
특히 서울대, 이대, 고대 등 수도권에 위치한 각 대학병원 레지던트들은 '지금 침묵하는 것은 미래의 환자와 후학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10년 후 산부인과의 미래입니다' '산부인과 학문 자체의 존폐 위기다'라고 적힌 피켓을 꺼내 들고 강한 우려를 표출했다.
서울대병원은 산부인과 레지던트는 물론 펠로우까지 1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채워 이번 사태에 대한 산부인과계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포괄수가제 저지, 의사라는 책임감에 목소리 낸다"
이날 산부인과 의사들은 복강경 수술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게 된 이유가 '수가도 돈도 아닌 전문가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면 결국 중중도 높은 환자 즉 포괄수가 내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를 기피하게 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갈텐데 이를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복강경수술은 매년 새로운 장비 출시로 수술기법도 발전하는 분야인데 이를 고정 수가로 제한할 경우 의사들은 수술을 기피할 것이고, 이는 곧 한국 산부인과 의학기술의 퇴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사무총장은 "일부 경영을 잘하는 병원장은 경영적자를 내면서 복강경 수술을 하는 교수에 대해 불이익을 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교수들 스스로 부담을 느껴 수술을 꺼릴 수 있다"면서 "정부는 부작용이 눈에 보이는 정책을 왜 추진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 우리의 목소리가 소득 없이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데 대해 산부인과 의사들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했다는 것은 역사의 한페이지에 남기고 싶다"면서 "중요한 시점에 산부인과 의사로서 침묵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건정심 유보…"우리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
또한 산부인과학회는 이날 오후 건정심에서 산부인과 자궁수술 및 자궁부속기수술에 대해 의결을 유보하고 소위원회에서 재논의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 확인후 입장을 밝히겠다며 조심스러워했다.
다만 산부인과학회도 복지부와 협의할 의지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김병기 산부인과학회 비상대책위원장(삼성서울병원)은 "우리 또한 7월 1일부터 복강경 수술을 중단하는 사태가 없길 간절히 바란다"면서 "그 전에 정부가 긍정적인 안을 제시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산부인과학회가 제시하는 안은 정부가 처음 포괄수가제 개정안을 발표한 지난 2년 전과 동일하다.
'심각한 동반질환이 없는 재왕절개술'과 '개복에 의한 자궁적출술'만 포괄수가제를 시행하자는 것.
신정호 사무총장은 "복지부 측에서 7개질환에 대해 포괄수가제 시행을 고수하고 있으니 중증도가 낮고 수술 중 큰 변수가 없는 이들 2개 수술에 대해 적용하면 기존 복지부 안도 유지하고 산부인과도 어느정도 수용할 수 있는 안이 만들어 지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어 "산부인과 교수들이 바보도 아니고 우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 것도 안다. 학회는 합리적인 안을 제시했다고 본다"라면서 "정부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선행 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복지부가 건정심에서 자궁수술 및 자궁부속기 수술에 대한 의결을 보류한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선행 이사장은 "복지부가 건정심 논의를 연기한 것은 의미가 없다. 시간만 끌다가 또 다시 처음 제시한 안으로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 원로의사는 "단순히 건정심을 보류한 것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계속 강행한다면 다음에는 더 강경하게 대응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를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