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중이던 정신질환자가 자해를 한 끝에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병원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도중 자해를 해 사망한 A씨의 부모가 E의원 원장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했다.
A씨는 1999년 부모와 함께 처음 E의원을 방문해 강박증, 피추적망상 진단을 받았지만 진료를 받지 않고 돌아갔다.
A씨는 2000년 다시 E의원에 내원해 정신분열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바 있다.
2년 후 A씨가 결벽증세를 보이고 헛소리를 하는 증세가 심해지자 그의 부모는 응급구조환자이송단에 연락해 택시를 타고 E의원으로 갔다.
A씨는 E의원 앞에 도착하자 입원하기 싫다며 병원 안으로 들어가길 거부했고, 환자이송단 직원들은 A씨 부모의 동의를 얻어 수갑을 채워 E의원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당시 E의원 원장은 병원에 없었다.
그러자 A씨의 부모는 병원 2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1층에서 E의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입원 치료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해 E의원 원장은 병실이 없으니 인근의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A씨 부모가 완곡하게 진료를 요청하자 환자를 보호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A씨 부모는 아들을 보면 집에 가자고 조를 것을 염려해 2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계속 1층에 있었다.
그 사이 A씨는 환자대기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소란을 피웠고, E의원 원장은 A씨 부모가 이를 알리자 간호사에게 진정제를 투여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환자이송단 직원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환자를 2층 환자대기실에 혼자 두고 식사를 하러 가자 A씨는 소파를 밟고 천장에 있는 형광등을 뽑아 깨뜨려 목 부위를 자해했고, L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A씨의 부모는 E의원이 환자에게 진정 약물을 충분히 투여하지 않았고, E의원 원장이 환자 진료를 직접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병원의 과실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 E의원 원장이 병원에서 기다리라고 한 사실, 환자 흥분 상태를 진정시킬 약물을 투여할 것을 간호사에게 지시한 사실 등을 놓고 볼 때 양자는 진료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다"고 환기시켰다.
반면 재판부는 "병원 간호사가 진정 약물을 투여한 이후에도 다소 흥분 상태에 있었고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간호사가 계속해서 원장에게 환자의 상태를 보고하고, 원장이 다시 진정 약물을 증량해 투여하도록 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오히려 환자이송단 직원들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환자를 2층 대기실에 둔 채 나간 점에 비춰볼 때 환자가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에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E의원 원장이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은 등의 과실이 있다는 원고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E의원 원장이 즉시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서 환자에 대한 진단 및 관찰을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병실이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환자가 응급상태였다면 환자이송단의 도움을 받아 다른 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으며, E의원 원장이 환자의 흥분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약물 투여를 지시해 진단 및 관찰을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병원이 환자대기실에서 환자들이 자해를 할 가능성을 예견해 형광등을 환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설치하거나 안전장치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