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구매대행을 계약하면서 의료재단에 보증금 3억원을 지급했는데 재단이 파산해 버렸다. 그렇다면 이 3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다. 이 3억원 자체가 리베이트로 취급돼 반환청구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 16부는 최근 의료장비구매 대행 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증금 3억원을 지급했지만 의료재단이 파산하자 이를 돌려달라며 A주식회사가 제기한 보증금 반환 소송을 기각했다.
A사가 의료재단이 지급한 돈은 보증금이라기 보다는 리베이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15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A주식회사가 병원과 부대시설 신축을 추진중인 B의료재단과 의료기기 독점 판매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A사는 의료장비구매와 관련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 조건으로 B의료재단에 3억원의 보증금을 입금했고 B재단은 이에 대한 영수증을 발부했다.
하지만 B의료재단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병원을 짓기도 전에 파산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A사로서는 의료기기 공급을 해보지도 못하고 3억원을 날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A주식회사는 B의료재단을 대상으로 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B의료재단의 사정으로 계약이 파기된 만큼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B의료재단은 이 금액이 리베이트에 해당하므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돼 이를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의료기기 판매업자가 의료재단에 의료기기 채택이나 판매 촉진 등을 목적으로 제공하는 모든 것은 리베이트로 봐야 한다"며 "이는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비용을 전가시키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행위"라고 못박았다.
재판부가 이 보증금을 리베이트로 판단한 것은 반환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마땅히 보증금이라면 반환 시기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도 이 조항이 없다는 것은 결국 일방향적인 리베이트로 봐야 한다는 것.
재판부는 "계약이행 보증금을 지급했다면 마땅히 어떠한 시기에 어떤 방법으로 반환을 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이 계약서 상에는 이에 대한 어떤 문구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개원 전 계약한 방사선 장비 구매 계약서를 보면 76억 3052만원에 구매 계약이 되어 있는데 이는 보통 가격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이러한 사안을 종합해 볼 때 A사가 의료재단에 건넨 금액은 리베이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A사는 의료기기 리베이트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발생한 행위인 만큼 이 법을 소급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물론 이 사건이 의료기기 리베이트법 신설 이전에 발생한 행위이기는 하지만 이 조항은 형사처벌 규정을 만들기 위해 신설된 것일 뿐 그 전에 리베이트 행위를 인정하는 의미는 아니다"며 A사의 주장을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