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을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볼 때가 많다. 한 직역이나 단체의 수장을 만나는 경우는 더 그렇다.
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거침없는 언사를 뱉는 수장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발언을 극도로 꺼리는 일도 종종 본다.
몇년 전 모 의료기사 단체 회장이 기자를 당황하게 한 적이 있다. 자신이 했던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자 대뜸 전화를 걸어 "내가 언제 이런 말을 했냐"고 호통을 친 것이다.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기사가 나갔다는 취지의 언급이 아니었다.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는 식의 오리발이었던 것. 예상치 않게 후폭풍이 거세니 조금만 수정해 달라고 요청해도 될 일이었다. 이만저만한 실망이 아니었다.
의사 단체와의 마찰 때문에 이런 촌극을 빚은 것으로 미뤄 짐작되지만 적어도 수장이라면 자신이 내뱉었던 말에 책임을 져야한다.
발언의 수위가 높아 기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특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정호 충북대 의대 교수는 항암제 '넥시아'의 효능이 의심된다는 글을 게재했다가 명예훼손으로 올해만 4차 피소를 당했다.
한특위 유용상 위원장 역시 사이비 의료와의 전쟁을 선포했다가 명예훼손에 걸려 송사를 치른 바 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해 발언하는 만큼 거칠게 없다는 이들을 취재하고 있노라면 그 자리에 꼭 맞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두를 길게 뽑은 것은 최근 겪은 일 때문이다.
원격진료가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에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정작 원격진료의 대상이 되는 환자단체가 침묵하고 있는 점은 기자를 의아하게 했다.
마침 몇년 전 토론회에서 원격진료에 우려 입장을 밝혔던 모 대표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고 어렵사리 통화가 됐다.
최소한 환자들을 위해 입장이 나올 거라 기대했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얼마 전 인터뷰 중 실언으로 의료계의 뭇매를 맞은 까닭인지 발언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원격진료가 환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그는 기자들과의 취재 요청에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면서 끝내 대답을 거부했다.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대다수 환자들이 원격진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묵비권'만 행사했다.
자신의 발언이 어떻게 변형돼 기사화될 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몇년 전 토론회에서 원격진료에 우려를 나타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의 발언이 어떻게 비춰질까에만 걱정하는 모습에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수장의 자리에 있다면 그 격에 맞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많은 회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묵비권 유감, 적어도 수장들에겐 '침묵은 금'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