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청이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한 지 300여일째. 103년 역사의 진주의료원에 쏟아지던 카메라 세례도 잠시. 어느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준비를 하는 듯하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 박석용 지부장에게 진주의료원 폐쇄 반대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4년 새해가 밝아오지만 의료원이 재개원하지 않는 한 그에게 바뀌는 것은 없다. 추위가 깊어가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경남도청 앞을 떠나지 않고 있다. 노숙농성 105일째를 맞은 지난 24일, 박 지부장에게 그동안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을 직접 들어봤다.
"홍 지사, 보람된 1년 보냈다고? 우린 고통스러웠다"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 발표 이후 숨가쁘게 달려온 그가 지난 300여일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던진 말은 홍준표 도지사에 관한 것이었다.
"홍준표 도지사는 취임 1년째를 맞아 실시한 행사에서 '참으로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회고하더라. 참 기가 막히고 씁쓸했다. 진주의료원에 있던 환자들과 직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박 지부장은 최근 홍 지사가 진주의료원 매각 대신 공공시설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공공시설이라면 공공병원도 포함해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앞서 진주의료원을 경남도청 제2청사로 활용할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이후 지적이 쏟아지면서 이를 번복했지만 솔직히 이제 더 이상 그의 말을 신뢰하진 않는다."
그는 홍 지사에 대해선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지만 함께 해 준 시민단체와 국회의원, 노조원들에게는 "여기까지 오게 해준 동력"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진주의료원 이력 재취업에도 걸림돌"
그는 지금도 의료원 폐업 이후 어쩔 수 없이 전원조치된 환자들과 직장을 잃은 직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진주의료원 폐업 이후 전원 조치된 환자 중 37명이 사망했으며 추가로 질병이 발생한 환자도 있다.
그는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환자에 대한 퇴원강요는 인권침해이며 기대수명을 다하지 못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보고, 입원해 있던 환자들 생각에 더욱 안타까웠다고.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직장을 잃은 직원은 약 240명 정도 된다. 다들 재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50명만 일자리를 찾았다. 들리는 얘기로는 진주의료원에 근무했다고 하면 다른 병원에서 잘 받아주지도 않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
이제 조합원 50여명만이 의료원 재개원을 촉구하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 앞서 해고된 조합원 중 10명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지만 그 이외 조합원은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투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 지부장은 이런 조합원을 생각하면 진주의료원 재개원이 현실화되기를 기대하게 된다고 했다.
"속는 게 답답해 철탑농성도 감행…더 이상은 안속는다"
이제 곧 1년이 다 되어가는 투쟁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홍 지사가 일방적으로 폐업방침을 발표했던 지난 2월 26일이 가장 참기 힘든 순간이라고 했다.
또한 지난 4월 12일, 경남도 문화복지위원회에서 진주의료원해산조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실제로 당시 박 지부장은 화를 참지 못해 경남도청 옥상 철탑에 올라가 8일간 농성을 진행한 바 있다.
"그 땐 너무 분도가 치밀어 뭐라도 해야했다. 즉흥적으로 철탑에 올라갔고 그렇게 농성을 시작했다. 준비한 것이라곤 육포 몇개 뿐이었다. 당시 4월이었지만 꽤 쌀쌀했는데 침낭도 없이 맨몸이었다. 몇일 지나면서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침낭도 올려주고 의사도 올라와서 진찰을 했다."
그렇게 농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홍 지사는 "성실하게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취했고 박 지부장은 그의 말을 믿고 농성을 끝냈다.
하지만 홍 지사의 약속은 말 뿐이었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금와서 얘기지만 그때 담판을 지었어야 했는데 후회했다. 홍 지사가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믿지 않는다."
"3년전 평범한 조합원…그런 내가 강성노조일 리가 있나"
그가 홍 지사를 미워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진주의료원 노조를 강성노조라고 몰아세우며 노조원이 의료원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주의료원이 강성노조라면 이렇게까지 경남도에 당하고만 있었겠느냐"면서 자신이 지부장이 된 배경을 털어놨다.
박 지부장은 3년 전만 해도 평범한 조합원으로 진주의료원에서 운전직을 맡고 있었다. 당시 지부장 선거가 다가왔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 2~3개월째 공석이 이어졌고, 어쩔 수 없이 그가 맡게 된 것.
그는 노조 활동에 대한 경험도 전무해 끝까지 거절했지만 누구 하나 나서질 않아 대안도 없었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는 내가 지부장이 될 정도인데 강성노조가 말이 되나. 지부장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노조가 해체될 위기였을 정도인데…사실 얼마 전에도 지부장 선거를 했는데 여전히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출마했고 만장일치로 당선됐다."
사실 그의 건강상태는 진작에 지부장을 그만뒀어야 했다. 그는 지난 1월, 당뇨와 혈압 등 건강이 악화되면서 병원 신세를 졌다.
그러는 와중에 진주의료원 사태가 터졌고 경남도청과 맞서 싸우다 보니 건강을 챙기는 것은 뒷전이 됐다.
한때 체중이 105kg에 달할 정도로 건장했지만 지금은 94kg으로 줄었고, 혈압과 당뇨지수는 오락가락한다.
"건강을 생각하면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노조활동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진주의료원이 재개원할 때까지 투쟁을 끝내지 않을 생각이다."
"의료원 재개원, 홍 지사 고집만 꺾으면 간단한 일"
힘든 상황에서 지부장을 맡고 있는 만큼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촉구하며 홍 지사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올해 진주의료원 논란으로 공공의료의 상징이 되면서 재개원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홍준표 도지사가 고집만 꺾으면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를 심판하고 진주의료원 재개원 공약을 내세운 도지사가 당선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