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국민건강보험 정상화 추진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이전에 공단 쇄신위원회가 발표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서 청구·심사·지급체계를 일원화한 건강보험 운영시스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공단이 틈만 나면 건강보험 심사권 이양을 주장한 바 있었지만, 2011년 김종대 현 공단이사장이 취임한 이후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심지어 김 이사장은 최근 개인 블로그에서조차 자동차보험의 예를 들면서 심사권을 주장하고 있다.
접수 당시부터 보험자격 확인이 이루어지는 자보와 달리, 건보는 의료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심사결과를 통보하면 공단은 그에 따라 지급하므로 자격확인이 사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잘못 지급된 급여비를 추후 환수해야 하는 등 행정력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공단이 건강보험의 진료 시작부터 급여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의사들은 당혹스럽고도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심평원은 건강보험의 보험자인 공단과 의료 공급자인 의료기관 사이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건강보험법에도 요양급여비용의 심사는 심평원의 업무로 규정되어 있으며, 공단은 보험자로서 자격 관리나 보험료 부과, 징수 등이 본연이다. 굳이 관련 법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급여비를 지급하는 보험자가 직접 심사를 하게 된다면 재정 절약을 위해 얼마나 편파적인 심사를 하게 될지 명약관화하다.
그럼에도 이미 공단은 '현지확인'이라는 이름으로 심평원의 현지조사, 즉 실사에 준하는 요양급여 관리·감독을 의료기관에 가하고 있으며, 종종 초법적이고 무차별적인 현지확인으로 인해 의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단이 심사권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의료계를 도발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보의 예를 들면서 비용을 지불하는 보험자가 심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다. 자보의 경우도 과거 각 손보사들이 자체적으로 심사를 하고 진료비를 지급해오던 것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불공정하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최근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 개정되었고, 심평원으로 심사가 위탁되었다.
심평원의 심사나 현지조사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도 있지만, 공단이 건강보험의 심사권을 가져가는 것은 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보험자가 급여비 지급을 이유로 심사에 직접 간여해야 한다면, 최근 건보재정에 맞먹는 규모로 성장한 민영보험, 특히 실손형보험의 심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실손형보험의 보험자인 생명보험사 등이 심사권을 요구한다면 공단은 이에 찬성하는가. 나아가 건강보험의 심사에도 간여하는 실손형보험이 이를 계기로 대체적 의료보험으로서 지위를 요구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건강보험 진료비의 심사는 재정적인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의사의 의학적인 판단은 물론이고 환자의 건강 증진을 우선하여 이뤄져야 한다.
건보재정 운영에 비중을 두는 공단이 심사를 했을 때 국민 건강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는 자명하다. 굳이 재정절감을 목표로 한다면 차라리 보험료 징수와 자산의 합리적인 관리에 더욱 매진하라. 공단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는 것이 국민 건강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