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급여기준을 위반했지만 의학적 타당성을 부정할 수 없는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를 둘러싼 건강보험공단과 병원계간 치열한 법정 공방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법원은 공단이 전체 원외처방약제비 중 80%를 환수하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27일 원외처방약제비 사건 6건 중 4건을 기각하고, 2건을 파기환송했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서울대병원 원외처방약제비 사건과 관련, 의료기관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전을 발급해 공단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제반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전액 환수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서울고법에서 다시 심리하라고 파기환송한 바 있다.
서울대병원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약제를 처방했다 하더라도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기 위해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갖춘 처방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이 원외처방으로 받은 요양급여비용은 처방료에 불과하고, 직접적으로 취한 이익이 없다는 점도 책임 감경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원외처방전으로 공단에게 발생한 손해를 모두 서울대병원에게 부담하라고 하는 것은 손해분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비춰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환기시켰다.
다시 말해 서울대병원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전을 발급한 것은 모두 위법이지만 의학적으로 처방이 불가피한 사례 등 책임 감경사유를 판단해 손해의 범위를 다시 정하라는 게 대법원의 주문이다.
대법원은 "서울대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경감할 사유에 대한 심리 판단을 누락한 채 이 사건 원외처방전으로 공단에게 발생한 손해액 전부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원심(서울고법 판결)은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공단은 약국에 지급한 공단부담금 외에 환자가 약국에 지급한 본인부담금까지 손해에 포함시킨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 본인부담금은 환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환수처분의 소멸시효가 3년이 아닌 10년이라며 병원계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이 서울대병원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1심과 2심 법원의 재판부 상당수는 공단이 80% 환수하는 게 적정하다고 판단했지만 일부 재판부는 70%, 10% 등으로 엇갈린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27일 대법원이 하급심에서 제각각으로 제시한 원외처방약제비의 책임 비율에 대해 어떻게 결론내릴지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법원이 기각한 원외처방약제비 4건은 고대병원, 경희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차병원이 제기한 사건이다.
이들 의료기관 사건의 공통점은 서울고등법원이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 비율을 80%로 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고법의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의사가 의학적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더라도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약제비에 대해 공단이 80% 범위에서 환수하라는 원심을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이들 4개 병원 외에 백제병원, 순천향대병원 사건에 대해서는 파기환송했다.
서울고법은 백제병원 원외처방약제비 사건에 대해 공단이 50%를 환수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서울고법이 정한 책임제한 비율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대법원은 "의료기관의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전 발급행위와 관련해 유사 사건간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원심은 병원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전을 장기간 반복적으로 발급했고, 이미 유사한 사건이 다수 확정된 바 있음에도 병원의 책임비율을 그와 상당히 다르게 정할만한 구체적인 경위와 내용에 대해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병원의 책임비율을 다른 유사한 사건 수준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서울고법이 순천향대병원 사건에 대해 공단의 환수비율을 10%로 정한 것 역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다른 의료기관의 원외처방약제비 환수사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