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힘의 대결. 혹자는 임총 결과를 이렇게 해석한다. 대의원과 집행부간의 권력 싸움에서 밀린 노환규 회장이 불신임을 당했다, 이 정도로 해석하기엔 이번 사태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
이번 갈등의 본질은 발언권이라는 생각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말처럼 영예와 불명예도 모두 말에서 빚어졌다.
19일 임총 당일. 진행요원들이 노환규 회장의 임총장 진입을 막아섰다. 한쪽에서는 '말' 좀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한쪽에선 투표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맞선 형국이다.
노 회장이 발언권을 얻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낙마가 확정된 후에야 집행부는 아쉬운 소리를 덧붙였다.
"어떻게 초유의 불신임안건을 논의하기 전에 당사자인 노 회장의 소명 발언 등 최소한의 의견 개진을 보장하지 않았냐"고.
대의원들이 밀실 정치로 노 회장을 탄핵하려 한다며 임총장에 진입을 시도했던 전의총 회원들도 사실 '발언권'이 얻고 싶었던 것일 게다.
따지고 보면 대의원회와 노 회장의 파국은 발언권 쟁탈전에서 시작됐다.
지난 달 임총에서 감사단은 권고안을 채택했다. 노 회장이 페이스북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니 자제를 당부한 것이었다.
다음 날 노 회장은 보란듯이 페이스북에 왜 감사단이 참견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항명했다. 결국은 발언을 제한하려는 자와 발언을 하고 싶은 자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노 회장은 한술 더 떴다. 페이스북을 통해 수차례 회원총회를 개최해 대의원회를 해산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언급했다. 대의원회가 의협의 내부 개혁을 막고 있어 정관 개정으로 이들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였다.
수긍할 부분이 없잖아 있는 주장이지만 하루 아침에 개혁의 대상, 구태의 상징이된 대의원들 눈에는 곱게 보일리 없었다.
이 때부터 갈등의 골이 깊어진 듯 싶다. 모 대의원이 불신임 카드를 꺼내들었다.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노 회장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 시도의사회장도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총회의 의결을 존중해야 하지만 노 회장은 이런 결정과 권위를 부정하며 언론과 페이스북을 통해 의결사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불복을 천명했다"면서 "자신과 대의원총회의 대결구도로 갈등양상을 연출했다"고 비판했다.
불신임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노 회장은 기자회견 장소를 빌어 이를 '쿠데타'로 언급했다.
모두가 말이 말빚을 낳고 발언이 강도를 더해가며 갈등의 파국을 키운 셈이다. 지난 달 임총의 감사단 권고안을 받아들였다면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까.
의협 역사에 첫 불신임을 받은 노환규 회장. 임총이 끝나자마자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변은 다음과 같다.
"탄핵을 받았지만 불명예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협 106년 역사 속에서 토호세력으로 변질된 시도의사회중심의 의사회에 처음으로 반기를 들어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노력의 대가로 탄핵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발언권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