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에서 최고의 '갑'은 국회와 보건복지부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보건의료계를 좌지우지하는 입법부와 행정부 위상과 역할을 갑-을 관계에 비춰 이같이 표현했다.
국회 법안 발의와 복지부의 의료정책 방향에 따라 의사 10만명을 비롯한 보건의료인 모두가 긴장한다.
의사들이 저수가 개선과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정책 및 제도를 아무리 외쳐도 국회와 복지부의 동의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갑'도 보이지 않은 슬픔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임기는 4년으로 보좌진도 임기를 함께한다. 보좌진 내부는 영감(국회의원 지칭)의 재선 여부에 따라 '말'을 갈아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초선 의원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보좌진은 고용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한 보좌진은 "다음 선거까지 1년 반 남은 상태로 미래를 불안해하는 동료 보좌진들이 적지 않다. 현재로선 누구도 영감의 재선여부를 가늠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복지부 상황도 녹록치 않다.
행정고시 합격으로 5급 사무관 임용을 시작으로 서기관과 과장, 국장, 실장 등 관료사회를 거친다.
사무관과 서기관은 소신을 갖고 업무에 매진하는 뜨거운 가슴으로 일한다면, 과장과 국장은 승진을 위한 성과에 주력하는 차가운 이성에 집중한다.
임원으로 불리는 실장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실장직은 청와대 발령으로 실별 수 백 명의 부하 직원을 거느리나, 대통령 사인에 언제든 옷 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복지부 내부에서는 '실장에 임명되는 순간, 사직서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되고 있다.
국회와 복지부도 일반회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유한한 계약직인 셈이다.
의료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보건의료 정책도 '갑'의 생태계에서 만들어지고, '을'의 생태계에서 시행되고 사라지는 동일한 사이클을 반복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