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진실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조롱’ 당하고, 다음에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지만, 결국에는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분당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암센터장 한호성 교수는 복강경 수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말로 함축해 설명했다.
간담췌암 수술 권위자로 통하는 그는 복강경 수술의 임상적 가치를 하나씩 증명해 나가고 있는 이 분야 선구자로도 불린다.
2004년 국내 처음으로 복강경을 이용한 담낭암 수술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한데 이어 2006년 복강경 우후구역 간엽절제술, 2009년 복강경 중앙 이구역 간엽절제술에 성공했다.
지난 7월에는 복강경 간세포암 절제술이 개복수술과 비교해 수술 후 재원기간이 짧고 출혈·상처·염증·일시적 간 기능부전 등 합병증 발생률 또한 낮게 나타난 10년 장기추적 결과를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9월 연이어 개최된 아시아태평양복강경외과학회(ELSA 2015)·국제소화기내시경포럼(IDEN 2015)에서 각각 학술위원장과 런천 심포지엄 좌장을 맡아 바쁜 일정을 소화한 한호성 교수는 지금도 의심어린 시선으로 복강경 수술을 바라보는 외과의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조롱’과 ‘격렬한 반대’까진 아니어도 증명이 필요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그는 “복강경으로 어렵고 복잡한 암 수술을 하게 된 게 10년에 불과하다”며 “더욱이 복강경 수술이 활발하게 이뤄져 개복수술처럼 인식된 시기 또한 불과 5~6년 밖에 안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처럼 대놓고 복강경을 (개복수술과 비교해) 입증되지 않은 위험한 수술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외과의들이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같은 현실에서 한호성 교수가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보고한 간세포암 절제술이 개복수술로 간암수술을 진행하는 것보다 환자 삶의 질에 더 긍정적이라는 연구결과는 큰 의미가 있다.
적어도 복강경 간절제술의 안전성과 치료효과가 개복수술과 같다는 근거를 제시해 복강경 수술의 임상적 가치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근본적으로 복강경 수술에 따른 생존율이 개복수술과 동등하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복강경 수술은 간세포암 절제술 후 간 기능이 떨어지는 등 합병증 발생률이 개복수술보다 훨씬 낮게 나타나 환자 삶의 질 측면에서 궁극적인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강경 간절제술 개척자답게 새로운 의료기기 사용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기존 2D 복강경을 사용하던 한호성 교수는 지난해 초 출시된 3D 제품을 접하면서 현재 대부분의 수술을 3D 복강경으로 집도하고 있다.
3D 복강경은 기존 2D 영상으로 파악이 어려운 입체적인 구조를 육안으로 직접 관찰하듯이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물론 수술 정밀도를 향상하고 수술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각도에서 자유로운 시야 확보로 난이도가 높은 수술에서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는 “2D로 보면서 젓가락을 집는 것과 3D로 집는 것 어느 것이 좋겠느냐”가 반문한 뒤 “3D 복강경은 수술할 때 2D처럼 상상하지 않고도 바로 정확히 보이고 원근감 및 깊이를 알 수 있다. 또 2D보다 사용하기가 훨씬 편하다”고 밝혔다.
올해 대구에서 열린 ELSA 2015에 앞서 9년 전인 2006년 ‘Regional Meeting of ELSA 2006’이 한국에서 개최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외국 의사들이 인식하는 한국의 복강경 수술 수준은 크게 뒤쳐져있었다.
한 교수는 “ELSA 2015와 똑같은 걸 9년 전 한국에서 했었다”며 “당시 외국 의사들이 복강경 수술 관련 스피커(Speaker)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할 정도로 한국을 우습게봤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전 세계에서 복강경 수술을 배우러 올 만큼 한국이 복강경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번 ELSA 2015를 계기로 스페인·일본·대만 의사들이 분당서울대병원·고대안암병원·삼성서울병원으로 복강경 술기를 배우러 오기로 했다”고 귀뜸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뛰어난 술기를 인정받고 있는 한국 복강경 수술이 국내에서 따로 증명할 필요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그날 ‘환호성’을 외칠 한호성 교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