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문진 과정에서 여성청소년 환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여성가족부가 예방접종 전 초경 여부, 월경 관련 증상 등에 대해 문진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를 신청할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놔 주목된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여성가족부는 예방접종 과정에서 초경 등 자세한 문진이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냐는 민원에 대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인권위 조사, 구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회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건강 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말부터 만12~13세 미만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등을 시작했다.
문제는 이번 사업이 단순히 예방접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예방접종 전 체크리스트에 따라 초경 여부, 월경 관련 증상 등에 대해 의사가 직접 환자와 상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
접종 주체인 보건소 공중보건의사들은 문진 과정에서 환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자칫 아동청소년보호법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백신 접종 상담 과정에 보조인력을 배석시키는 방안을 복지부에 요청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조창식 일반과개원의협의회 부이사장은 여성가족부에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의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가능성을 질의했다.
여성가족부는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의 설문지가 아동성추행에 해당하는 지는 설문지의 제작 경위와 이전 관계, 객관적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해당기관과 상의해 달라"고 회신했다.
조 부이사장은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예시해 다시 질의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예방주사 또는 건강검진 목적으로 병의원을 내원한 12세 여자 아동에게 상세하게 질문하는 것으로 인해 해당 여자 아이 또는 아이의 부모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생각한다면 성희롱에 대한 조사, 구제 절차가 있으므로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 구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회신했다.
문진 과정의 의학적 필요성이나 문진 항목의 객관성과 무관하게 환자나 보호자의 '성적 수치심' 여부에 따라 인권위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 다시말해 정부가 주관하는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의 설문 항목 그대로 문진을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인권위 조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조창식 부이사장은 "여성가족부에서 받은 회신 내용을 요약하면 국가 NIP 사업에 참여, 문진을 해도 여성청소년이 수치심을 느끼면 인권위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며 "더욱 문제는 수치심이라는 주관적 항목에 의해 면허가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체 접촉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 필요에 의해 초경 여부나 신체 발육 상태를 묻더라도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면 그걸로 게임이 끝난다"며 "아청법이 걸면 걸리는 법인데 의료인들 중 누가 적극적인 진료를 하겠냐"고 우려했다.
실제로 복지부도 아청법을 우려, 각 지자체에 접종 과정에서 참관인이 배석해 줄 것을 요청하는 협조공문을 발송했다.
복지부는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 등 보건소 방문 여성 환자에 대해 공보의가 환자와 단독으로만 진료하면 의도하지 않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공문 발송의 배경을 설명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복지부가 참관인 배석 공문을 보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며 "복지부가 주관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인이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참관인이 배석한다고 해도 환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면 면허가 박탈되는 게 아청법의 현실이다"며 "불합리한 부분을 개정하려는 노력없이는 방어진료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아청법 위반 여부를 여성가족부가 주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며 "회신 공문은 일반적인 성희롱에 대한 조사·구제 절차가 있다는 것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구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고 반박했다.
그는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과 무관하게 병의원에서 12세 아동이 성추행을 당했을 가능성을 묻기에 법적 구제 절차를 설명했을 뿐이다"며 "클리닉 사업의 아청법 위반 여부는 복지부에 질의하거나 인권위가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