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커버 공급 중단 배경 '사전약가인하제' 지적…시장 확산 우려
식대에 묶여있는 재료대 한계…수십년째 질 낮은 튜브에 의존
이지현 기자
기사입력: 2019-06-24 05: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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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대학병원에서 수술후 의식이 없는 환자. 그가 회복하는데 영양이 최우선이지만 공급이 끊길 위기다. 의사가 처방하던 수입 경장영양제가 국내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2. 수술후 의식이 없는 환자의 회복을 위해 코 삽관형 튜브를 통해 영양을 공급해온 B대학병원은 고민에 빠졌다. 식대는 6천원선인데 튜브비용만 3천원에 달해 적자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수술후 영양공급은 환자가 회복하는데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제도적인 한계로 환자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 한호성 회장(분당서울대)은 21~22일까지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 혁신파크에서 열린 KSPEN 2019를 맞아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경장영양제 공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엔커버 공급중단 배경 사전약가인하제…하모닐란 확대될까 우려"
가장 큰 우려는 기존에 경장영양제로 가장 흔히 처방하던 엔커버(일본 오츠카)가 최근 국내 공급을 중단한 것.
현재 경장영양제는 다양하지만 전문의약품으로 승인받아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은 엔커버와 하모닐란(영진약품)이 유일한 상황. 의료진들은 자칫 환자회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장영양제 공급이 끊기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호성 회장은 "엔커버가 국내 공급을 중단한 배경에는 사전약가인하제 요인이 크다고 보고 있다"며 "하모닐란도 같은 이유로 시장에서 빠지는게 아닌가 매우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사전약가인하제란, 의약품의 보험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경우 예상 추가 청구액 등을 평가해 약가를 인하하는 제도. 즉, 청구건수가 늘어날수록 약가가 인하돼 결국 제약사 입장에선 마진이 감소한다.
지난해 엔커버 유통 판매액은 200억원 이상을 기록, 의료진들이 경장영양제로 흔히 처방해왔던 만큼 파장이 상당하다.
한 회장은 "이는 환자의 회복에 매우 중요한 부분인만큼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와 더불어 사전약가인하제는 결과적으로 환자가 피해를 볼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식대에 묶인 재료대…질 높은 '튜브' 있어도 못쓰는 현실
또 다른 문제는 경장영양제를 공급하는데 필요한 디바이스 즉, (코에 장착한)튜브의 비용.
대개 의료기관들은 레빈관(Levin tube)이라고 하는 코를 통해 삽입할 수 있는 가느다란 관을 이용해 영양을 공급해왔다. 문제는 얼마 전 PVC로 만들어진 튜브에 발암성이 있다고 사용중단 지침을 내린 것. PVC성분이 아닌 튜브는 수입제품만 존재하는 상황. 결국 의료기관은 1개에 3천원하는 수입제품으로 교체를 해야한다.
더 문제는 경장영양제를 공급하는 튜브 즉, 재료대는 별도의 수가코드가 없이 식대에 포함한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식대에서 튜브 비용까지 감당해야하는 꼴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식대수가는 일반식 4690원(영양사, 조리사 가산 550원+500원 별도), 치료식 6100원. 치료식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절반이 튜브비용으로 빠져나가면 결국 병원은 적자를 감수하고 이를 공급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학회 박도중 총무이사(분당서울대)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 병원들은 막무가내로 기존 PVC제품을 사용하거나 울며겨자먹기로 수입제품을 구입하고 있다"며 전했다.
그는 이어 "식대에 (정장영양제 공급에 사용되는)재료대를 포함하다보니 수입제품 중 우수한 제품을 아예 써볼 생각도 못한다"며 "환자들에게는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경장영양제 시장의 발달로 코에 삽입하는 튜브 기술도 발전, 환자가 이물감 없이 편안하게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재료대가 식대에 묶여있다보니 여전히 이물감으로 불편하고 열흘 이상하면 코가 헐어버리는 튜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한호성 회장은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는 올해 첫 국제학술대회를 유치하며 아시아 리더그룹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지만 제도적인 한계로 의료현장은 어려움이 많다"며 "영양공급 재료대는 식대로 묶을 게 아니라 별도의 수가를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