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가족의 애환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은 1994년 아ㆍ태 영화제 작품상 수상한 영화 '음식남녀'는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제목만은 어필했던 것 같다.
음식과 관련한 동호회 이름 중 가장 많은 것이 '음식남녀'라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음식과 사람이라는 관계 속에서 '음식남녀'라는 명칭은 음식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남녀가 이루어지는 상당히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같은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음식과 함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맛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 메디게이트의 음식남녀들을 만나봤다.
이름 탓일까? 메디게이트(www.medigate.net) '음식남녀' 동호회에는 전설이 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3대와 4대 시삽은 둘 다 장씨였고 그들은 모두 동호회 활동 중에 평생 반려자를 만났다.
옛부터 음식을 먹으며 함께 한 사람은 친근감이 더해져 보다 더 친밀해진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같은 의업에 종사하고 동질성을 가지는 사람들끼리는 오죽하겠는가.
물론 처녀ㆍ총각외에 기혼자가 더 많지만 이 동호회에서 대화는 누구나 끊임없이 이어진다.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 병원 이야기 등 그러나 머리아픈 의료정책 이야기는 왠만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의약분업 당시 투쟁에 참가하고 나서 정모에 참석했다는 초창기 시절 회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음식남녀의 화제는 분업이었다. 지금은 골치아픈 옛날애기가 됐지만 말이다.
최근 '음식남녀'의 정모가 있던 날, 압구정동의 한 중식당에 모인 의사들은 보졸레누보와 색다른 중식요리를 맛보기 위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최근에 회원으로 입회한 이해영 원장이 제공했다. 이 원장은 중식당을 운영할 정도로 중국 음식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제공하는 편의에 회원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음식도 일품이었다.
이날 이벤트는 베스트드레서를 뽑는 행사였다. 그래서인지 다들 의상들이 화려했다. 특히 여의사들의 의상은 화려하다 못해 영화제에 참석한 여배우를 방불케 했다.
근사한 검은 드레스를 멋지게 빼입고 나온 한 여의사는 자신은 사진에 나오면 안된다며 "혹시 지나가다 찍혔다면 멋지게 포샵처리를 해주세요, 사례할꼐요"라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3번째로 정모에 참석했다는 이인영 원장은 음식남녀 동호회에 대해 "음식도 음식이지만 정말 사람들이 유쾌하고 좋아요"라며 자신이 동호회에 가입한 이유를 소개했다.
응급의학 전문의 일명 '하선생'은 친절한 미소와 매너로 회원들을 사로잡았다. 언뜻 처음 참가한 것처럼 말이 없어 보이지만 그는 정모때 마다 빠지지 않는 열성 회원이다.
수원에서 뒤늦게 합류한 한수진 선생은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로 입장하자 마자 좌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한 회원의 "베스트드레서가 진짜되고 싶었나 보다"라는 농담에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웃으며 재치있게 받아친다.
한수진 원장 역시 음식남녀의 열성 팬이다. 2대 시삽을 맡기도 했던 그녀는 환자 진료를 보면서 1개월에 1천개의 게시물을 올린 이력으로 유명하다.
"안될 말이지만 사실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게시물을 올린 적이 있어요, 눈은 환자에게 맞추고 손은 계속해서 타자를 치고 있죠. 호호"
'음식남녀' 동호회는 온라인에서도 활발하지만 그 성격상 오프라인 정모도 활발한 동호회다. 식사가 끝나면 술자리도 함께 하면서 훈훈한 인생 이야기도 늘어 놓는다.
이들이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명제는 바로 'N분의 1' 모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5~6만원선에서 각자 부담한다.
동호회 시삽인 조정호 원장은 "큰 부담없이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고 회원간에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곳"이라며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맛을 즐기는 미식가라기 보다는 좋은 음식도 맛보고 편안하게 사람들과 분위기를 즐기려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단돈 5만원으로 즐기는 맛있는 요리와 유쾌한 만남, 손해보는 일은 아닐성 싶다. 그들과 함께 음식의 세계로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