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등으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환아들의 교육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아프면 교육을 못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최근 의료의 수준이 높아지고 이에 환아들의 완치율도 높아져 감에 따라, 완치 후의 사회 복귀를 위한 '교육의 권리'까지 미친 것이다. <메디칼타임즈>는 최근 병원내에 개교하는 '어린이학교'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 등을 살펴봤다.
지난달 25일 한양대병원에서는 '어린이학교' 개교식이 있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한 환아의 사정이 한양대학교 게시판에 알려지면서 올해 3월부터 자원봉사로 운영된 '어린이학교'가 성동교육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은 학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소아과병동 입구에 마련된 10여평의 교실에서 10여명의 아이들은 지루한 병실생활의 탈출구를 얻게 됐다.
이뿐 아니라 환아들은 특수교사와 자원봉사교사에 의한 1:1 혹은 집단교육을 통해 완치 후 학교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도 동시에 얻었다.
내년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하는 이승호 군(17, 가명)은 부족한 수업일수와 군데군데 빠진 교과서의 빈 자리를 '어린이학교'에서 채울 수 있게 됐다.
"진정한 완치는 의료외적 지지가 중요"
실제로 장기 입원하는 환아들은 병을 무사히 이겨 학교나 사회로 복귀할 때 부적응과 소외, 그리고 상당한 심리적 변화를 겪고 있다.
상당수의 환아들이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해 제 학년에 배우지 못하고, 1~2년 아래 아이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는 일이 태반이다. 게다가 제 학년에서 친구들과 배우더라도 빠진 수업이 많은 탓에 학교공부를 소화하지 못하는 일도 빈번하다.
특히 오랜기간 친구들과 떨어져 있는 탓에 '왕따'를 당하는 사례도 있다. '학교'를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환아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상을 반영한다.
심리적으로 예민한 시기인 이때 환아들은 비록 '육체의 병'은 낳았지만, 사회 부적응으로 인해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한양대병원 어린이학교의 교장이 된 이영수 교수(소아과)는 "아이들이 힘든 항암제치료를 끝내고 진정한 완치가 되기 위해서는 의료진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의료외적인 지지가 중요하다"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린이학교 전국 7곳 운영중-12곳 개설 검토
그러나 '환아'의 교육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실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병원은 극히 일부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정식인가를 받아 학력을 인정하는 병원내 '어린이학교'는 전국에 7곳이다.
지역적 편차가 심한데, 서울에서는 서울대병원, 한양대병원 2곳이며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부산대병원, 부산백병원, 동아대병원, 경상대병원, 국립부곡병원 5곳이다. 대부분 1~2년새 들어섰으며 다른 지역은 없다.
이는 장기 입원환아들이 주로 42개 종합전문요양기관에 골고루 나눠져 있다고 가정해도 환아의 16%밖에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셈. 더군다나 서울지역의 대형병원들이 대거 빠져있어 실제 혜택을 받는 환아의 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어린이학교의 수가 얼마되지 않다보니 일반인 뿐 아니라 환아부모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어린이학교가 있는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혜택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대병원 관계자는 "모든 병원에 '어린이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병원에 입원하면 부모들도 '어린이학교'의 존재를 몰라 아이들의 교육 문제을 포기하는 경향이 많다"면서 "환자들이 자주 바뀌는 병원 특성상 일일이 홍보하는 것도 어렵다"고 전했다.
한편 연세 세브란스병원을 포함한 12개 병원이 어린이학교 개설을 검토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학교, 병원 설립의지가 '관건'
그렇다면 병원내 어린이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까? 관계자들은 모두 병원이 '어린이학교를 개설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입을 모은다.
특히 병원이 '장소'를 제공할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어린이학교 설립을 위한 예산 지원 등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병원측이 장소만 마련해 준다면, 시도교육청이 기자재 구입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며 특수교사를 파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양대병원에서도 이같은 공식은 그대로 적용됐다.
특히 올해 3월 통과된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안에서 '심장장애·신장장애·간장애 등 만성질환으로 인한 건강장애'를 특수교육대상자로 인정하기로 함으로써 제도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환아들의 교육권 확보를 위해 우선 시도별로 1개 병원이라도 '어린이학교'를 마련한다는 계획아래 12곳 정도에서 추진하고 있다"면서 "병원측이 설립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부산지부 관계자는 "병원학교는 환아들의 가까운 자리 있어야 하는데, 병원입장에서는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에 자리를 내기 어려워 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병원에서 협조를 해주느냐가 절대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김린아 사무국장과 이영수 한양대병원 교수 역시 "어린이학교는 병원의 의지만 있다면 당장 설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 지속 지원-중고생 프로그램 필요"
한편 현재 어린이학교를 운영 중인 병원들은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운영비를 보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
경상대병원 관계자는 "처음 학교를 개교할때 교육부에서 기자재와 컴퓨터 등을 지원받았으나 시간이 흐를 수록 컴퓨터도 새로 구입하고, 낡은 기자재 등을 교체하는 하다보니 추가 지원이 없이는 운영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부산대병원 어린이학교의 경우 백혈병소아암협회 부산지부가 운영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고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프로그램이 초등생 위주인 탓에 중고생에게는 상대적으로 교육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검정고시'를 선택하는 환아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아대병원 관계자는 "초등학생보다 중고생이 실질적으로 교육이 가장 필요한 층"이라면서 "이들 학생들이 교육의 감을 잃지 않도록 학교사회사업과 연계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 환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허하라
일부에서는 병원평가항목에 '어린이학교'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적극적인 주장을 펼쳐기도 한다. 제도적 지원책이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이 자율적으로 '어린이학교'를 마련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당수 병원들이 환아들에 대한 자원봉사형태의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 병원측이 좀 더 적극적인 의지로 이를, 정식인가 받은 학교로 승격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학교를 운영중인 한 병원 관계자는 "학교가 설립된 후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교실문앞에 줄을 서는 등 아주 적극적이며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아이들에게 '어린이 학교'가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설립을 추진 중인 병원까지 포함하면 20여곳의 병원에서 '어린이학교'가 운영될 전망이다. 이같은 추세를 따라 다른 대형병원들에서도 '어린이학교' 설립 붐이 일어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