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논문 조작사건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황우석 교수는 민간 후원금만 33억원에 달하고, 연간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주물렀다.
그러나 대부분의 임상연구자들에게 이런 연구 환경은 꿈도 꾸지 못할 먼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서울아산병원 전상룡(신경외과) 교수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연구자다.
전상룡 교수는 지난해부터 만성기 척수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해 오고 있지만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 교수는 식약청 허가를 받아 줄기세포 임상연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연구 포기를 검토해야 했다. 연구비를 댈 후원자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지난해 초 우연한 기회에 모기업체로부터 조건 없이 1억원을 지원 받아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계속 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앞이 막막하다.
임상연구자들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의 치료비를 연구비에서 대야 한다. 지금까지 2명의 환자로부터 골수를 채취해 자가이식하고, 각종 검사를 하면서 1인당 많게는 1천5백만원이 지출됐다.
그러다보니 전 교수는 당초 10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후원금 1억원으로는 턱도 없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환자에게 투입된 치료비를 일일이 계산하고, 앞으로 얼마가 더 들어갈까 계산하는 것이 연구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가 돼 버렸다.
연구 과정에서 발생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료 5백만원은 후원금이 아니라 자비로 부담했다고 한다.
전 교수는 “임상 이전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는 결과가 좋았고, 원인을 규명했다”면서 “이번 임상시험은 자가 골수이식이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 목표이며, 이 연구가 끝나면 척수를 손상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급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 교수는 지금 하고 있는 연구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2단계 연구를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연구 문화 특성상 네거티브 리포트가 나올 경우 후원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엄청나다고 한다.
전 교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최첨단 연구분야이긴 하지만 언제 연구성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면서 “연구비 기부 자체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지원에 그치고, 연구에 대한 기대가 커 연구자의 부담이 적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전 교수는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한 것은 엄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연구자 입장에서는 ‘조작’을 해서라도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연구자의 도덕성도 중요하지만 황교수 사태를 통해 열악한 연구환경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