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항생제 처방률 공개 4개월
복지부가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한지 4개월이 되어가는 지금, 의료계에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항생제 과다처방의 불명예를 져야했던 일부 병원들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처방률을 낮추기 위해 자구책들을 마련, 시행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는 것. 항생제 처방률 공개 이후 달라진 의료계의 모습을 담아봤다. <편집자주>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항생제 처방률이 전면 공개된 지 오는 9일로 벌써 4개월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 의료계를 휩쓸었던 홍역은 어느정도 진정국면에 들어섰고, 최근에는 처방률을 낮추기 위한 변화의 노력들이 엿보이고 있다.
대학병원, 자발적 노력 선도...'달라진 환자'에 개원가도 "줄인다"
지난 2월 발표에서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던 A병원 관계자는 "항생제 처방률 공개 이후, 병원 내 처방률이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처방률 공개 이후, 항생제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정, 배포하는 한편 교수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교육을 시행하는 등 자발적인 노력을 펼쳐왔다"며 "초기에는 반발이 심했지만 최근 교수들 사이에서도 '항생제 처방률 공개를 받아들여야 하고, 처방률을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항생제 처방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B대학병원측도 처방률 공개이후, 자발적인 항생제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며 환자들을 3개 스텝으로 구분해 각 단계에 알맞는 항생제 사용권장량를 제시, 처방률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B대학병원 관계자는 "공개의 타당성을 떠나 처방률 공개가 항생제 처방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항생제 처방을 줄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병원, 각 교수들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방률 공개이후, 항생제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개원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P의원 관계자는 "처방률 공개이후 환자들이 먼저 항생제 처방 여부를 묻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항생제를 꼭 써야 할 경우 환자에게 동의를 구한 뒤 처방할 정도이다 보니 자연히 처방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F의원 관계자도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환자들의 인식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정보왜곡 막아야"...평가기준 적정화 과제
그러나 항생제 처방률 공개가 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부 환자들 사이에서 '항생제는 무조건 나쁘다'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면서, 의사들의 처방권이 제한을 받고 있는 것.
F의원 관계자는 "일부 환자들의 경우 '항생제는 독약'이라고까지 생각하는 등 왜곡된 사고를 가지고 있어 문제"라며 "정부와 언론이 항생제의 폐해만을 강조하다보니 꼭 필요한 경우에도 항생제 처방을 거부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의료계의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에 제재를 강화하기 보다는 먼저 평가기준을 적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항생제를 줄여야 한다는데는 동의하지만 1차 기관과 3차 기관을 동일한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또 전체 환자 중 감기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한데도 이것이 전부인양 발표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상병코드 변경시 기획실사 등 제재만 강화하는 것은 병원계의 반발만 살 뿐"이라며 "우선 항생제 처방률 공개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하고, 병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만한 정책을 펴야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