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혼란에 대한 병원계의 반응에 병협 집행부가 긴급진화에 나섰다. 병협은 ‘자료유보’와 ‘자료제출’이라는 중소병원들의 격론을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선에서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추후 회원병원의 불만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협회 김철수 회장은 28일 열린 긴급 전국병원장회의에서 "연말정산과 관련된 법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해하나 협회장이 법을 지키지 말자고 하는 것은 의사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병원간 자율판단이라는 협회의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모두 발언을 통해 정영호 보험이사는 “지난 2005년 재경부와 보험공단이 의협과 병협에게 의료비 소득세법 개정을 내비칠때 지금의 상태를 예감하고 결사반대한 바 있다”며 “이러한 가운데 협회 업무로 세법이 고쳐질 될 때까지 이를 간과해 아무런 대책없이 놓친 것에는 할 말이 없다”고 해명했다.
정 이사는 “최근 국세청과의 논의에서 올해 의료계가 협조를 해준다면 세무조사 없이 적당히 넘어갈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다”고 전하고 “현재 병협 집행부가 재경부 국회의원과의 지속적인 만남으로 올해는 적당한 선에서 자료제출을 하고 내년도 소득세 재개정을 하는 것을 추진중에 있다”며 병협 집행부가 지닌 생각을 설명했다.
이에 경기도 한 병원장은 “현재 의사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조차 솔직히 세금문제로 100% 신고하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라며 “얼마전 만난 청와대 모 수석이 ‘의사는 매달 500~1000만원 벌지 않느냐’는 사회주의적 발상을 지닌 것을 보고 환자정보와 의사보호 차원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해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고 분을 토했다.
군포시 한 산부인과 전문병원장도 “병원들이 세무조사가 두려워 자료제출에 굴복한다면 이는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의사의 명예와 자존심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내년에 세무조사를 안 받는다고 후년, 그 다음해에 세무조사가 없겠느냐”며 병협이 구상중인 자율적 자료제출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와 달리 서울시 모 정형외과병원 원장은 “대의명분을 토대로 원칙을 지켜가야 한다는데는 공감하나 대기업도 떨고 있는 국세청을 싸워 이길 수 있겠느냐”며 “환자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국세청과 공단이 이를 엄한 곳에 사용하게 되면 강한 벌칙을 부여한다는 조항을 마련하는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병협 이익단체 맞나...국회의원 활용성도 전무
특히 포항 한 병원 실무자는 “2년 전에 감지된 의료비 소득세 문제를 이익단체인 병협이 방관했다는 것은 어처구기 없는 처사”라고 전제하고 “의약계 출신 국회의원을 동원해 국회 소위원회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개정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야 했다”며 그동안 부동자세를 취해온 병협의 행보를 비판했다.
회원들의 설전을 경청하며 회의를 진행한 김철수 회장은 “일부 병원에서 이번 소득세 자료제출에 대해 위헌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법조계에 자문한 결과 10%의 승소 확률밖에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도 지켜야 하는게 지식층인 의사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병협이 정한 자율정책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김 회장은 “국세청이 올해 협조하면 내년 세무조사를 경감하겠다는 뜻을 병원계에 피력한 만큼 내년도 법 개정 추진에 혼신을 다하겠다”고 언급하고 “내일(29일) 의약 5단체장이 모여 이 문제의 원활한 해결을 위한 성명서를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며 회원들의 협조와 이해를 간곡히 당부했다.
회의 후 향후 대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철수 회장은 “아무리 잘못된 법이라도 일단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협회가 법 준수 여부를 해라, 하지마라 정하는 것은 옳지 않은 만큼 각 병원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판단하는게 현명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해 협회 결정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자료제출 거부의 당위성과 병협의 무대책을 강도높게 비판한 회원들의 목소리를 의식한 김철수 회장은 시종일관 상기된 표정을 지으면서도 각 임원진의 적절한 대응발언을 적절히 활용해 병협 수장다운 민첩한(?) 처세술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