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임을 버리고 공무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공직에 발을 딛지 않는게 좋을 거예요.”
지난 7년간의 복지부 생활을 마치고 연세대 보건대학원으로 돌아온 의료법윤리학과 김소윤 교수(사진, 37)는 최근 메디칼타임즈와의 만남에서 그동안 공직 사회에서 느낀 짧지만 숨가쁜 시간들을 솔직하면서도 과감하게 밝혔다.
먼저, 김소윤 교수로 “모교인 연세의대 교정으로 돌아오니 아직 업무적으로는 익숙하진 않지만 친정에 온 듯한 편안한 느낌”이라며 “얼마전까지 복지부 서기관시절 서류검토 중심에서 지시를 내리는데 익숙했다면 이제는 학문적으로 독자적인 연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고 말해 공직에서 교수로 변신한 자신에 대한 쑥스러움을 내비쳤다.
인터뷰가 지속되자 김소윤 교수는 “연세의대 본과시절 학년대표와 여학생대표를 지내며 새로운 사회생활에 눈을 뜨면서 새로운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회상하고 “진료라는 한계를 벗어난 거시적 의학을 설명한 손명세 교수의 강의를 계기로 정책결정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며 당시 캠퍼스를 누빈 당찬 여대생에서 공무원으로 탈바꿈한 계기를 설명했다.
김소윤 교수는 “2000년 4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를 시작으로 2002년 7월부터 복지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며 “그동안 보험급여과, 보건산업진흥과 등을 거치며 많은 의료정책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정책 과정에서 겪은 주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장관 도출발언으로 정책 철회 등 비화 소개
김 교수는 “보험급여과 노연홍 과장(현 보건의료정책본부장) 시절 김강립 현 의료정책팀장과 함께 추진한 의원급 진찰료 인하로 의료계와 큰 마찰을 빚은 바 있다”고 말하고 “상식적으로 입원과 다른 외래 서비스를 동일하게 가격을 책정한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어 과감하게 추진했다”며 가나다군 진찰료 통합 정책에 대한 야사를 털어놨다.
이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수포로 돌아간 ‘DRG 의무화’로 김 교수는 “당시 보험급여과 임종규 과장과 함께 7개 질병군을 포괄수가제로 묶은 정책을 장관의 동의하게 추진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추진하지 않는다’ 장관의 갑작스런 돌출발언으로 허탈해하면서도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임 과장과 동분서주한 기억이 새록하다”고 언급했다.
공무원 조직의 특성과 관련, 김소윤 교수는 “공무원은 미래를 대비하며 변화와 창조를 이끌어 가는 그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전제하고 “내년도 예산 책정을 위해 향후 5년을 계획하며 중장기적인 정책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며 공무원 조직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지적했다.
김소윤 교수는 다만, “어느 조직에나 자리를 탐하는 부류가 있듯이 복지부에도 같은 종류가 존재한다”며 “장·차관의 눈에 띄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분류가 지나간 보직을 유심히 살펴보면 겉모습만 화려할 뿐 성과는 전무하다”고 말해 공직사회 내면에 존재하는 ‘줄 서기식’ 관료주의를 꼬집었다.
의사(연세의대 96년졸, 예방의학전문의)이면서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공무원으로 느낀 점은 무엇일까.
김소윤 교수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의사가 아닌 국민’이라는 신념을 갖고 행정공무원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매사에 신중을 기했다”며 “정책을 결정에 앞서 이권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선·후배와 만남도 자제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데 주력했다”고 말해 원칙에 입각한 공무원 경험담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의료정책, 담당 공무원 설득하면 쉽다
김 교수는 이어 “의료계가 복지부와의 대화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합리성과 논리성을 토대로 공무원을 설득하면 된다”고 토로하고 “담당부서 공무원을 설득하면 그가 내부를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며 의료계의 대정부 전략에 대한 비법을 공개했다.
공직을 바라는 의사 후배를 위해 김소윤 교수는 “의학을 안다는 것을 빼고는 공직사회에서 의사 직종이 가진 메리트는 크지 않다”며 “서열사회에 익숙해질 각오가 되어 있으면 직업적으로 괜찮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복지부를 비롯한 공직사회는 행시 출신을 중심으로 지역적, 동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하고 “의사 출신이 팀장급 이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의사라는 생각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공무원으로서 상하간 화합과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돌파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시켜야 한다”며 복지부 의사직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끝으로 김소윤 교수는 “앞으로 교수로 지속할지 아니면 공무원으로 되돌아갈지 언급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만약 복지부로 복귀한다면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모 차관의 말과 같이 ‘공무원은 기생’이라는 표현처럼 쉽지도 편하지도 않은 자리이나 의료정책 결정자로서 본부장 자리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해 공직사회에 대한 욕심을 가감없이 표출했다.
지난 2000년 국립의료원 KONOS 공무원 시절 본 기자와 첫 만남을 가진 김소윤 교수는 선머슴풍의 숙녀에서 30대 후반의 결혼 4년차 주부로 변화했지만 인터뷰 중 눈이 내린 교정을 바라보는 해맑은 미소는 과거와 변함없는 순수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