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제59차 정기대의원총회가 싱겁게 막을 내렸다.
의료법 개정, 회장 불신임, 정관개정 등 굵직굵직하고 민감한 안건이 많아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장동익 회장에게 힘을 실어준 채 1년 살림 밑천인 올해 사업계획 및 예산안조차 의결정족수 미달로 통과시키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쳤다.
21일 사업계획 및 예산결산분과위원회 토의때만 하더라도 대의원들과 집행부간에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등 긴장된 분위기였다.
이날 감사단은 감사보고서를 통해 공금횡령 소송비용이 당초 집행부 주장과는 달리 공금에서 지불되는 등 회무와 회계 여러 부분에서 회장과 집행부가 책임져야할 의혹과 오류가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김세헌 대의원이 상근부회장 등 과다 휴일수당 지급을 문제삼고, 회장의 법인카드가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을 제시하면서 다그치자 조짐이 심상치 않다는 수근거림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22일 총회가 개막되자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사전 교통정리를 완벽히 한 것처럼 별다른 문제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의료법 개정 작업에 대한 초기대응 미숙 지적과 장동익 회장의 법인카드 사용 의혹을 둘러싸고 집행부를 옹호하는 대의원들과 개혁파 대의원들간 설전이 오가고, 유희탁 의장과 장동익 회장이 멱살잡이 직전까지 간 상황 정도다.
내과의사회는 전날 정기총회를 열어 장동익 회장 지지에 암묵적으로 동의했고, 연세의대동창회는 지난 2월3일 임시총회에 이어 또 다시 총동원령을 내렸다고 한다.
대의원회 운영위원회에서 상정한 '정부안 확정시 집행부 총사퇴 권고안'은 결정을 유보하고 정부안이 확정된 시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장동익 회장은 "정부안이 확정되면 사퇴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말해, 사퇴를 고려할 생각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총회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주요 안건들이 대부분 분과위원회 논의과정에서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경상남도의사회가 내놓은 '의협회장 사퇴권고안'. 유희탁 의장과 장동익 회장이 첨예하게 맞서온 회장 불신임 요건 완화, 대의원 직선제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정관개정안이 분과위원회에서 주저앉았다.
의협회장 선거방식을 현행 기표방법과 함께 인터넷 투표를 병행하는 정관규정 개정안도 폐기했다.
의협 홈페이지 접속제한 해지건은 포탈사이트 접속은 회비 문제와 별도로 해야한다는 의견과, 기본적인 의무인 회비납부를 이행하지 않은 회원에 대한 제제는 정당하다는 의견이 맞서면서 표결에 부쳐져 27대10으로 무산됐다..
그나마 회장 선거권 자격 제한 규정을 완화하고 피선거권 자격 요건은 강화하는 내용의 선거관리규정 개정안을 통과된 정도다.
선거자격은 회비 미납기간이 5년에서 '최근 2년간 연회비를 완납하지 않은 자'로 대폭 완화됐다. 반면 피선거권자는 의협 회비를 모두 완납한 회원만이 후보 자격을 갖도록 명시했다.
본회의에 올라간 주요 안건 가운데서도 서울시의사회 등에서 상정한 의협 회장 간선제 선출안은 의결정족수가 미달해 자동 폐기됐다. 분과토의결과를 보고하는 시간이 되자 대의원들이 무더기로 토론회장을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업계획과 예산결산 심의분과 안건도 통과되지 못하고 집행부의 요청으로 대의원들이 서면결의하는 형식을 취해 통과시키기로 하는 등 파행 운영됐다.
이에 대해 한 대의원은 "지난 7년간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의결정족수 미달로 안건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대의원총회를 왜 매년 꼬박꼬박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또 다른 대의원은 "의협은 아직 멀었다. 회원들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대의원들대다수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고, 일부만 설치고 나섰다"며 "오늘 총회는 장동익 회장의 완승으로 끝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