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가 성모병원의 임의비급여 혐의에 대해 28억원 환수, 141억원 과징금 처분을 내린지 한 달이 지났다. 사상초유의 행정처분을 받은 성모병원. 현 시점에서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는 정상화된 것일까. 성모병원 의료진들은 불법진료(?)를 포기하고 건강보험법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정상진료를 하고 있을까. 성모병원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층취재했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산자도, 죽은자도 환급민원 “환자 못믿는다”
(중)합법진료 굴레에 고통받은 의사와 환자들
(하)곪아터진 임의비급여, 누가 돌을 맞아야 하나
성모병원 혈액내과 A교수는 임의비급여사태 직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성모병원에서 백혈병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보호자가 찾아와 앞으로 비급여 약에 대해 민원을 내거나 일체 문제 삼지 않을테니 무슨 약이든지 투여해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이 보호자는 다른 환자, 보호자들의 연대서명까지 받아와 통사정을 했다.
성모병원은 8월초 복지부로부터 170여억원에 달하는 행정처분을 예고받자 가급적 식약청 허가범위를 초과한 약제의 경우 투여를 자제했고, 그러자 환자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보호자는 환자가 사망하자 바로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신청 민원을 냈다.
A교수는 “임의비급여사태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 환자나 보호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라며 "보호자 스스로 비급여약 처방에 동의해놓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신뢰 했었는데 요즘에는 방어적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임의비급여사태를 전후해 나 스스로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털어놨다.
"환자가 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에도 심평원으로부터 날라 온 진료비 환급 통지서에 사인을 했는데 총액이 수억원에 달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 의료진과 환자는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니라 대립된 존재”라면서 “혹시 이런 치료를 하면 문제가 되진 않을까, 민원을 넣진 않을까 고민할 정도로 믿음이 깨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심지어 모교수는 환자들이 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딜레마는 성모병원에서 진료하는 상당수 교수들이 느끼는 현실이다.
B교수는 “복지부의 과징금 처분 이후 가장 큰 혼란은 의사와 환자, 보호자간의 신뢰 상실”이라면서 “일부 환자 보호자들은 치료를 받을 때에는 건강보험 여부에 관계없이 좋은 약을 써 달라고 요구하고, 막상 사망하면 100% 진료비 환급 민원을 넣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성모병원 교수들은 일부 환자들의 이런 이중적 태도가 지난해 말 백혈병환우회가 병원의 불법진료비를 폭로한 직후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스트레스 못이겨 입원치료까지
심지어 일부 보호자들은 백혈병 환자가 사망하거나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면 의료진에게 대놓고 “가만두지 않겠다” “비싼 약을 써 진료비만 터무니 없게 나왔다”는 협박성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고는 민원을 내 진료비를 환급 받아간다는 것이다.
환자의 가정형편이 어려워 사회복지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해 골수이식을 받게 해 줬지만 끝내 사망하자 보호자가 심평원에 민원을 넣어 할 말을 잊었다는 교수도 있었다.
B교수는 “백혈병환자의 절반은 사망하는데 환급을 피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를 살리는 수밖에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복지부는 지난 7월 25일 성모병원이 불법진료를 해 왔다는 실사 결과를 공개했고, 그 직후 환수 및 과징금 처분을 예고했다.
여기에다 진료비 환급 민원이 더욱 급증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이런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요 보직을 맡은 교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국 입원진료를 받아야 했다.
"정부는 의료전문가 말살하는가"
C교수는 “의료진에게 죄가 있다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부당진료, 부당청구로 내몰고, 환자들은 로또 당첨된 양 환급을 받아가고 있다”면서 “너무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젠 산자들까지 민원을 낼 정도로 됐다”면서 “집을 팔아서라도 진료비를 낼테니 최선을 다해달라고 하지만 뒤돌아서면 너무도 당당하게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고 울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는 “중증이나 재발한 백혈병환자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요양급여기준이나 식약청 허가사항을 초과하더라도 약을 투여해야 하고, 정부가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뻔히 알면서 이를 방치하는 것은 의료전문가들을 말살하려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