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봉달희’ ‘뉴 하트’ 등 외과, 흉부외과의 어려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인기 메디컬 드라마가 촬영되는 대학병원.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면 병원 홍보맨들도 혹시 왜곡된 이미지가 담기지 않을까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얼마 전 모영화사는 건국대병원에 영화 촬영 협조를 요청해 왔다. 대본을 살펴본 건국대병원 오근식 홍보팀장은 대본을 수정하지 않으면 협조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았다.
조직폭력배를 수술중인 수술방에 부장검사가 뛰어 들어오는 장면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 팀장은 11일 “아무리 영화적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병원 수술방에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면서 “만약 이런 장면이 나간다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실 촬영 현장을 지켜보면 이와 유사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고 한다.
건국대병원의 경우 새병원을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현대식 건물이다보니 ‘외과의사 봉달이’ ‘불량 커플’ ‘가을 소나기’ 등을 이미 촬영했고, 거의 매일 같이 촬영 협조 요청이 들어올 정도다.
하지만 시험관아기시술센터(In Vitro Fertilization Embryo Transfer Center)를 ‘test tube baby center’로 황당하게 표기하거나, 식물인간이 된 환자를 의자에 앉혀 발을 씻어주는 웃지 못할 장면을 찍으려 할 때마다 병원 홍보팀은 속이 터진다.
오 팀장은 “이런 잘못된 의학정보가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노출되면 오해를 살 수 있어 늘 작가들에게 의사의 자문을 구하고, 대본을 고치라고 잔소리를 해도 엉터리 장면을 내보내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그는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왜곡된 병원 정보를 줄여야 한다”면서 “작가들의 고정관념이 굉장히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웬만한 대학병원이면 EMR을 가동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호사들이 차트나 필름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장면을 찍겠다고 고집하는 것도 홍보맨들에겐 탐탁지 않다.
오 팀장은 “진료환경이 첨단화되고 있는데 촬영 스탭들은 자꾸 10년 전 모습을 연상한다”면서 “변화된, 긍정적인 병원 이미지가 많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역할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오근식 팀장은 “모든 병원과 의료진은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그런 모습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비춰져 불신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