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2005년을 표현한다면, 복지부동 그리고 ‘버스 지난 뒤 손 흔들기’ 가 아닌가 싶다. PPA 파동, 한방문제, 약대6년제, 노인요양제도, 조류 독감, 수가 계약, 황우석 사태 등 올해 발생된 사태에 대해 의료계는 총체적 무능을 보여 주었다.
약대 6년제는 ‘버스 지난 뒤 손 흔들기’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의한약정 회의를 거부하고, 회담장을 뛰쳐 나왔을 땐, 그 왕따적 행동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과 자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계속 남아 협상하면서, 비굴할지언정 의료계를 위해 최대한 실리를 얻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비사회적인 행동양식으로 인해 그 동안 의료계의 입지를 스스로 좁아지게 하고, 의료계가 궁지에 몰려왔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약정 합의가 이뤄지고, 안건이 복지부에서 통과되고 교육부로 이관되어실질적으로 결정되는 기간 동안, 과연 의협은 무엇을 했나 묻고 싶다. 그 이후 공청회 실력 저지 등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약대6년제가 통과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어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뻔뻔함에 나는 공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건강보험재정이 흑자 전환되었을 때, 수가를 대폭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결사적으로 생존권 투쟁을 벌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의료계 대표가 어려운 회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인 것이다. 3.5%의 인상안에 처음으로 합의해주고 난 후, 대다수 회원들이 당혹감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을 때, 의협이 의료 수가 계약에 만족한다는 기사를 내보내는 것을 보고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수가 현실화는커녕, 공동 연구 안의 수가 인상률도 확보하지 못하고, 명목은 3.5%이지만, 실질적으로는 4.2% 인상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것을 보면서, 의료계는 정말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지금 대다수 민초 의사들은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의료 수가로 생존을 위협받으며 고통 속에서 하루 하루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극심한 경영난으로 최후의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까지 해야 했던, 우리의 여러 동료 의사선생님의 살인범, 가정파괴범은 한국의 노예 의료 수가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의협은 회원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렇게 노예 의료 수가로 고통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조세포탈범, 공공의 적으로 매도되고 있으니, 대성통곡할 일이 아니겠는가?
의사협회, 경기도의사회, 인천시의사회는 모두 직선제이건만, 유독 서울시의사회는 시대착오적인 간선제를 고집하고 있다. 노원구의사회를 비롯한 여러 구들이 서울시의사회장 직선제를 안건으로 올렸어도, 간선제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조차 않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복마전 서울시의사회를 직선제를 통해, 깨끗한 조직으로 개혁해서, 의료계를 선도해 나가는 서울시의사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의료계에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내년 3월에 치러질 차기 의협회장 선거는 정권교체 등 정치의 격변기에 8만 의사들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선거이다.
지난 대선 때 한 정당 후보에 올인 했던 의료계의 오판 때문에, 그 후보의 낙선과 함께 돌아온 현 정권의 보복으로 인하여, 지금 의료계는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협의 정치세력화는 지도자의 능력과 노력뿐만이 아니라, 각 의사회 조직의 끝없는 노력과 헌신이 합쳐져야 이루어 진다.
의협회장 선거에 수 많은 훌륭한 후보들이 저마다 멋진 공약을 내걸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겠지만! , 차기 의료계의 지도자는 불쌍한 민초들의 눈물을 닦아 줄 마음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능력과 비전을 갖춘 분이었으면 좋겠다. 참담한 한국 의료의 폐허에서 선진 한국 의료의 체계를 구축하고, 블루오션으로 이끌 수 있는 초인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